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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기우는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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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흥선 대원군 부친 남연군의 묘를 도굴해 패륜 외국인의 대명사가 된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1832∼1903). 그는 1860년대에 세 차례 조선을 방문했을 때 보고 들은 것을 책(국내 번역서는 『금단의 나라 조선』)으로 남겼다.

그는 책에서 이미 접해 본 중국·일본과 조선을 비교하기도 했는데 “조선 사람들의 산업 기술과 기량은 아시아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억압적 정치 체제에 기인한다. … 현재의 정치 체제가 바뀌지 않고서는 어떠한 발전도 이룰 수 없다”고 악평했다.

그는 “조선에는 총신(특별히 총애받는 신하)이라는 흥미로운 존재가 있는데 그들의 영향력은 왕에 맞먹는다”며 특정 세력의 국정 농단을 지적했다. 국가의 사정(司正) 업무에 대해서는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관리들에게 행해지던 감시가 작금에 와서는 정부 자체를 보전하기 위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백성들에 대해 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페르트는 “‘간관(諫官·왕에게 직언하고 비판을 가하는 존재로 책에 묘사돼 있다)’이라는 관직은 단지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적었다. 그가 본 것은 40여 년 뒤에 망할 운명에 놓인 ‘헬조선’이었다.

정병석 전 코리아텍 총장은 지난달에 펴낸 책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에서 양반들의 특권 독점, 권위적 행정, 착취적 조세제도를 조선 후기의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최근 김종인 의원이 잡지 인터뷰에서 관료 사회의 경직성, 대기업의 탐욕, 정치권의 무능을 국가 위기의 근본 이유로 꼽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정 전 총장은 “과거(科擧) 제도는 교육열을 북돋우고 능력 중심의 관료제를 구현했다는 측면에서는 기여했다. 그러나 시험이 지나치게 관념적인 철학 위주였고, 실용적인 교육을 못함으로써 인적자원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피로인(被虜人)’ 중 평민·천민은 대부분 조선으로 돌아가길 꺼렸다고 설명하며 일본에선 기술자로 대우받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안정된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천시받고 의식주도 기약 없는 조선으로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왜란 피로인 중 귀환한 이는 수천 명에 불과했다.

정 전 총장은 책 끝머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고도 책임을 묻거나 반성하지 않고 근본적 혁신을 못했던 조선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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