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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논란 넘어 왜곡된 전기요금체계 개혁해야"…전기요금 토론회

중앙일보

입력

“누진제는 한국 전기요금 문제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이다.”

18일 ‘바람직한 전력요금 개편 방안’을 주제로 개최된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인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누진제 요금 문제를 넘어 10년 넘게 왜곡돼 온 전기요금 산정 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해외자원개발진흥재단에서 열린 토론회는 한국자원경제학회와 중앙일보 경제연구소가 공동 주관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2000년대 이후 석유와 가스 등 국제 에너지가격이 급등했음에도 전기요금만 인상률이 매우 낮았다”며 “연료를 발전해 생산하는 2차 에너지인 전기가격이 발전 원료인 석유·가스보다 싼 왜곡 현상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생산원가가 올라감에도 정부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낮은 수준으로 묶어뒀다. 이로 인해 난방과 농업용 온실연료 등에서 전기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값이 싼 에너지를 쓰는 건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 이라며 “지속가능하지 못한 체계를 유지한 정부 잘못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행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원가에 충실한 전압별 요금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은 지난 15일 새누리당과 정부가 내놓은 누진제 개편안을 ‘땜질식 처방’이라 비판했다. 당정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고 누진배율도 11.7배에서 2~3배로 축소하기로 했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당정의 개편안은 국민 여론만 의식한 포퓰리즘적 처방”이라며 “내년에 국민 불만이 다시 나오면 누진단계와 배율을 또 줄일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윤 교수는 “요금 인하는 근본적으로 한국전력이 독점한 전력 소매시장을 개방해 이뤄야 한다”며 “여러 사업자가 다양한 요금제를 내놔 경쟁을 하면 가격은 자연스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전기요금체계 분석을 위해 전력생산 원가가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한전은 생산원가가 영업기밀이라고 하지만 독점기업인 한전과 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기업은 경우가 다르다”며 “한전은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계량기 도입을 서둘러 정확한 요금 계측에도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기 에너지에 대한 정부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국민은 전기를 국가가 주는 혜택이 아닌 필수적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며 “국민은 누진제 사태로 이동통신 등 발전한 다른 서비스에 비해 전기 공급의 질이 낮다고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주택용 누진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대체로 공감을 했다. 전수연 국회 예산정책처 공공기관사업평가관은 “전기요금 왜곡 현상은 개혁해야 하지만 누진제를 폐지해 저소득층 보호란 정책적 목표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며 “원가연동제를 도입하고 전기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에너지바우처 지원대상 확대 등을 통해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선임연구위원도 “단계별 과도한 요금 상승은 완화하면서 저소득층 보호란 누진제 기본목표와도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키는 기형적인 에너지 세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 전기 생산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석탄과 원자력 발전 원료엔 현재 세금이 아예 없거나 매우 적다.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유연탄 발전의 세금은 ㎏당 27원(5000kcal이상)인데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액화천연가스(LNG) 세율은 ㎏당 60원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유연탄 세율을 LNG만큼 올리고 수입부담금도 부과해야 한다” 며 “장기적으론 신재생에너지 발전 투자비용을 전기요금이나 환경 정부 재정지원 등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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