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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장로 정치」 부활|다시 일선에 등장한 「혁명 1세대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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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홍콩=박병석 특파원】중공의 개방론자 호요방이 당 총서기직에서 실각하자 혁명 제3세대 (제대)들이 숨을 죽이는 반면 제1세대 원로들이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고 있다.
호요방 (72)시대 강조됐던 간부들의 「연경화」 (평균 연령을 젊게 하는 것)가 빛을 잃고 문화 혁명 후 제창했던 노 (혁명 제1세대), 중 (60∼70세 제2세대), 청 (50세 이하 제3세대)의 「3결합」을 전제로 한 장로 정치가 부활되고 있는 것이다.
호요방의 전격적인 실각은 중공 최고 실력자 등소평 (83)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온 근대화노선이 호요방·조자양을 위시한 제2세대로, 또 호계립을 비롯한 제3세대로 순조롭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등소평의 기본 구상이 일단 붕괴되는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
보름전 신화사 통신도 장로 정치의 부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도를 한바 있다.
이날 천진을 시찰중인 중앙 고문 위원회 부주임 박일파 (77)는 『젊은 간부를 적극 선발 등용하는 동시에 각종 형식을 채택, 노동지들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케 함으로써 노중청 3결합을 실행해야한다』고 말했다.
85년9월에 개최된 임시 전당 대회에서 뒷전으로 밀렸던 혁명 1세대 등 노 간부들이 다시 일선에 나서는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호요방의 인책 사퇴를 결의한 1월16일의 「정치국 확대 회의」라는 기존 제도상에 없는 기구에는 18명의 정치 국원 외에 17명의 중앙 고문 위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고문 위원들이란 바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장로들인데다 정치 국원 중에도 진운 (81) 팽진 (84) 등 몇명의 노인들이 남아 있다는 점만 봐도 노인들의 부활을 알 수 있다.
또 홍콩에서 발간되는 『90년대』 3월 호는 현재 중공의 최고 권력 기구는 「중앙 연석 회의」이며 그 구성원은 ▲등소평·호요방·조자양·진운·이선념 등 5명의 정치국 상임 위원 ▲팽진·습중훈·양상곤·여추리 등 4명의 정치국원 ▲왕진·박일파 등 2명의 중앙 고문위 부주임이라고 보도했다.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90년대』는 또 팽진·박일파·습중훈 중 한사람이 호요방을 밀어 젖히고 정치국 상무 위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1세대의 일선 복귀는 상대적으로 제3세대의 후퇴를 가져왔다.
호요방의 바통을 이어 총서기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호계립의 쇠퇴가 대표적 케이스.
떠오르는 별의 대표주자였던 호계립은 사실상 부총서기직과 같은 중앙서기처 상무서기직을 습중훈에게 넘겼으며, 왕조국과 함께 담당하던 서기처 이론소조도 등력군 (71)과 호교목 (74)에게 빼앗겼다.
이밖에도 호요방 계열인 부총리 교우 (62)이 힘을 잃었으며, 선전 부장 주후택은 경질됐고 50년대 공청단 간부로서 호요방과 관련이 깊은 외교부장 오학겸, 조직부 상무부 부장 왕조화, 안전 부장 가춘왕, 문화부 부부장 고점상 등의 지위가 불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개혁·개방에 공감하는 제3세대의 후퇴와 이념·사상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혁명 세대 장로들의 일선 복귀는 중공의 정책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장로파들도 범위·방법·속도에는 이견이 있으나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대다수의 국민들이 근대화 노선에 지지를 보낸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용 노선이 다소 완화의 추세를 보이지만 큰 물줄기는 변함이 없다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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