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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는 있고 죄는 없나|복지시설연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얼마전 세상에 물의를 일으켜 구속된 부산형제복지원 박인근원장이 지난달20일 한국부랑인 복지시설 연합회 회장으로 재선되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보사부는 그의 공로가 인정되고 박씨가 유죄판결을 받지않아 연합회측의 승인요청이 있으면 이를 승인해 주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하다. 도대체 사회정의가 어디있고, 이 사회의 선악과 양심을 재는 가치의 척도가 무엇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다.
다 아는 일이지만 문제의 박씨는 부랑인은 물론 직업과 가정이 멀쩡히 있는 직장인까지 강제로 납치,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특수감금을 일삼아온 장본인이다.
그뿐아니라 철부지 어린이까지 납치해 온갖 잡일을 시켜왔고 거액의 공금을 횡렴한 혐의로 구속된 당사자다.
더구나 복지원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인명이 숨겼고 검찰은 사인을 조사중에 있다.
부랑인으로 엉뚱하게 낙인찍혀 감금돼 혹사당했던 수용자가운데 일부는 가정으로 돌아갔고 몇몇 어린이는 가까스로 부모품에 안기기도 했으나 심한 충격과 후유증으로 지금껏 정상생활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의 장본인이 전국 36개 복지시설의 장으로 추대되었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를 승인해 주겠다는 보사부 태도도 납득할수 없는 노릇이다.
사회의 공분과 상처가 아물기도전에, 박씨사건이 검찰에 계류중이고 모든 진상이 드러나기도 전에 그를 연합회 회장으로 앉히겠다는 처사는 상식밖의 일이다.
그를 추대한 측은 그가 「복지원 운영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잘못보다는 공로가 더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공로」만 많으면 무슨짓을해도 과거의 전력이나 죄상을 백지화 할수 있고 「능력」만 있으면 어떤 자리라도 앉힐수있다는 것인가. 보사부의 변도 떳떳지 못하다.
그가 비록 구속되기는 했어도 최종 확정판결을 받지 않았으니 무죄로 추정되어 승인을 해주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무죄추정 원칙을 내놓은 보사부입장은 얼핏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박씨의 소행은 재판이전의 문제일뿐 아니라 확정재판까지 가지않더라도 그의 범행 사실은 이미 백일하에 알려져 있다.
강제납치됐다 풀려난 선량한 시민의 경우가 그러하고 부모품에 안긴 어린이가 있었다는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그의 유죄여부는 삼척동자라도 알수 있다.
설사 실정법 차원에서 범법사실이 전혀 없었다해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도의적으로도 도저히 용납치 못할 처지에 있다.
어디까지나 자숙하고 사회에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할 입장인 것이다.
박씨 회장추대사건은 사건 자체가 안고 있는 비도덕적이고 몰염치성도 비난받아 마딱하지만 이 사회에 뻔뻔스러움이 존재할수 있다는 병든 현상이 더 개탄스럽다. 비뚤어진 가치관, 무엇이 정의로운지 구별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더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이 사회를 지탱시키는 도덕과 건전한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 다같이 반성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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