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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왕국 「신일철」 군살빼기로 자구|3년대 고노 5기 폐쇄·20%감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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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최철주 특파원】거대기업 신일본제철의 불이 꺼진다. 엔고의 거센 파도가 철의 아성마저 무너뜨렸다. 세계 철강업계의 정상을 지켜오던 신일철이 더 이상의 적자를 감내할 수 없어 비장한 생존전략으로 그 동안 위용을 자랑해왔던 고노를 5기나 페쇄키로 해 일본산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신일본제철은 13일 무로란(실난) 등 4개 제철소에 있는 고노5기의 가동을 앞으로 3년 안에 중지시키고 오는 90년까지 종업원을 1만3천여명이나 감원, 5만2천명의 정예 인력체제를 갖춘다는 경영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조강생산은 나고야(명고옥) 등 4개 제철소로 설비를 집약시키고 3·4명당 1명꼴로 인원을 삭감해 일본철강업의「강적」이 되고있는 한국 포항제철수준으로 생산코스트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신일철은 작년9월 중간결산에서 적자액이 4백72억엔 (주식 매각액은 포함치 않음)에 이르렀으며 오는 3월 결산에서는 지난 1년 동안의 적자액이 1천억엔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돼 경영진은 위기감에서 뼈를 깎는 합리화방안을 확정했다.
이는 엔화강세로 전기·자동차등 철강제품을 사용하는 주요업종이 공장을 해외로 옮겨 국내수요가 급격히 줄고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도 계속 감소 할 것이며 엔화시세도 1달러에 1백50엔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자체분석을 토대로 결정됐다.
고노5기의 가동이 중지되면 신일철의 연간 조강생산 능력도 현재의 3천4백만t에서 2천4백만t으로 떨어진다. (올해 일본의 총조강생산능력은 9천5백만t)
합리화계획을 원안대로 밀어붙인다면 현재의 제철사업에 80%나 의존하고 있는 경영구조는 1995년에 50%이하로 떨어지며 그 대신 전자·정보통신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 복합적인 경영구조로 일대 변신하게 된다.
신일철은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엔지니어링·화학·신소재 등 사업도 전열을 가다듬어 전자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철과는 거리가 먼 생명공학에도 손을 대는 등 오는 95년도의 총 사업 규모를 무려 4조 엔으로 늘려 잡았다. 이는 85년 신일철의 매상고 2조6천8백억 엔을 훨씬 넘는 대담한 계획이다.
삭감인원은 자연 퇴직자를 제외한 전원을 새로운 사업분야에 재 고용하거나 자회사로 전출시키는 방안을 노조 측과 협의하고 있다.
신일철이 60∼초년대 일본 고도 성장의 주역을 맡으면서 공업지대로 발전해 왔던 해당 위성도시들은 고노의 가동중지발표와 함께 우울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시재정파탄으로 『존망을 예측키 어려울 것』 이라는 시 당국자의 하소연이 신일철본사에 몰리고 있다. 일본 근대제철의 발상지이며 『철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가마이시 (부석) 시장은 이 지역에 있는 신일철의 고노가동정지계획에 대해 『시민을 지키기 위해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한편 신일철의 경영합리와를 위한 몸부림은 스포츠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지원 · 육성을 아끼지 않았던 18개 스포츠 전문부서를 통폐합하며 특히산하에 있는 야하타 (팔번) 제철소의 야구팀이나 명성을 떨쳤던 럭비팀도 존속여부가 판가름날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철은 국가』 라든가 『제철은 성역』 이라는 표현은 이제 옛 말이 되었다.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신일철은 「국가의식」 을 버리고 「생존의 길」을 선택했으며 이 보다 앞서 역시 5대 철강 메이커의 하나인 과베(신호)제철소·스미토모(주지) 금속공업 등도 작년에 「경제강대국 일본」 을 상징하는 고노의 불을 일부 공장에서 꺼버리는 비통을 겪어야 했다.
신일철은「탈철」에 몸부림치면서도 특수철강분야에서는 기필코 세계적 우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술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88서울올림픽 이후에 수출능력이 그게 늘어날 한국포철을 매우 경계하고 있으며 어떤 대응전략을 갖추게 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기업들은 전망이 비관적이거나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을 땐 이를 과감히 사전에 정리,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슬기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부실기업의 판정이 내려진 후엔 손을 써봐야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엔고 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은 철강업계뿐만 아니라 조선·플랜트·석탄 등 중후장대산업도 동시에 겪고 있다.
인원삭감, 기구축소, 업종 전환과 공장 및 기술의 해외 이전 등으로 국제적 제휴를 추진하고 있으며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전기·자동차산업도 수익개선을 위해 재편성을 서두르는 지각변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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