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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민 마음속에서 탄핵" "국민 노릇 하기 부끄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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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왼쪽부터)은 12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공식 요구하지 않은 민주당 주최 집회에서도 하야·탄핵 주장이 나왔다. 신인섭·강정현 기자, [박지원 의원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왼쪽부터)은 12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공식 요구하지 않은 민주당 주최 집회에서도 하야·탄핵 주장이 나왔다. 신인섭·강정현 기자, [박지원 의원실]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100만 명 규모의 촛불집회엔 야권 대선주자들도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했다. 이날 오후 청계광장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가한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 마음속에서 탄핵당했다”며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수백만 국민의 목소리에 박 대통령은 귀를 기울여 달라. 그리고 답을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에 하루빨리 답을 하지 않는다면 질서 있는 퇴진마저 어려워지고 우리 국정은 파국에 빠져들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청계광장 근처 무교동 사거리에서 열린 당원 보고대회에 참석했다. 같은 장소에서 박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을 벌인 뒤다. 단상에 선 안 전 대표는 이날을 “시민혁명과 국민항쟁의 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우병우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검찰 고위 관료의 이름을 모든 국민이 알게 되는 이런 게 나라냐!”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공무원을 개인 비서로, 대한민국 국가기관을 개인 회사처럼, 대한민국 재산을 개인 돈처럼 써도 되는 거냐”며 “박 대통령 당신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시민과 당원들은 안 전 대표가 잠시 말을 멈출 때마다 “물러나라” “퇴진하라”를 외쳤다.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새누리당과 국가 반역세력이 아바타로 데리고 있는 박근혜가 민주공화국을 조롱하고 국민을 능멸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 시장은 “전 세계에서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는 혁명의 열기가 넘쳐나고 있다”며 “대한민국에선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가 혁명적 변화의 전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연설이 끝난 뒤 ‘박 대통령에 대한 하야(下野)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중하게 이 사안을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속도는 느릴 수 있다”며 “결국 국민의 뜻에 따라서 대통령이 퇴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추미애 “박 대통령에게 외치 맡길 수 있나”]
이에 앞서 대학로에서 열린 ‘100만 시민 모이자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광화문광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연설 트럭에 오른 박 시장은 “국민의 요구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목청을 높였다.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도 “국민들의 분노가 오늘 집회로 명백히 드러났다”며 “이런 국민들의 염원대로 나라가 바로 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방 일정과 도정 업무를 이유로 이날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안 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몸은 지역(충남)에 있지만 마음은 당과 함께, 국민과 함께 그곳에 있겠다”며 “국민이 나라와 역사와 광장의 주인이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 당과 함께 저 역시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의원도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목도리를 두른 채 집회를 함께했다. 손엔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김 의원은 행진을 함께한 뒤 “국민 다수의 목소리는 대통령 퇴진이었다”며 “민심의 쓰나미가 청와대를 삼킬 기세다. 대통령은 더 이상 민심을 거역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대통령이 조속히 수습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파국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국민의당·정의당과 달리 아직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날은 민주당 주최 행사에서도 퇴진·하야·탄핵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대통령이 나라를 버렸고 우리 국민도 이미 박 대통령을 버렸다”며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을 배신한 사람이 누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 대표는 또 “대통령의 배역이 공주였는데 이제 (최순실의) 꼭두각시로 바뀌었다”며 “국제적으로 조롱받으며 대한민국 얼굴에 먹칠을 한 사람이 박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추 대표는 “여야가 합의해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도 이 자리에서 설명했다. 그는 “내치(內治)는 총리에게 맡기고 외치(外治)는 자신이 해야겠다면서 ‘어쨌든 내가 대통령이다’는 걸 얘기했다”며 “주변 4대 강국의 영향을 받는 이 나라의 생존과 방향을 결정하는 게 외교인데, 이런 중차대한 일을 박 대통령에게 한시라도 맡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 정도의 민심을 보고도 대통령이 모른 척하면 위험해지지 않겠느냐”며 “내일(13일)께 대통령의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박근혜 정권은 다시 한번 안보불안과 경제불안을 외치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에 총리를 합의 추대해야 한다”며 “합의된 총리는 맨 먼저 (검찰·국가정보원에 있는) 우병우 사단과 (정부 내) 최순실 사단을 축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정동영 의원도 “국민은 박 대통령의 탄핵을 넘어 그 뒤 지점인 의식·가치관 혁명으로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 “낮고 겸허하게 민심의 소리 들어” ]
이날 집회를 지켜본 새누리당 지도부는 13일 오후 긴급최고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예측한 것보다 민심의 소리와 국민의 소리가 컸다”며 “더 낮고 겸허한 자세로 보고 있고 또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촛불집회엔 비박계 일부 의원도 참석했다. ‘최순실 사태 진상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새누리당 의원 모임’(진정모) 간사인 오신환 의원은 이날 오후 TV 녹화를 위해 광화문의 한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길에 집회 현장을 둘러봤다. 오 의원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수준의 민심을 확인하니 참담하고 괴로운 심정”이라며 “대통령께서 모든 걸 내려놓으셔야 국정 혼란이라는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상시국회의를 연다. 이 회의엔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참석할 예정이다.

최선욱·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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