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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과 레슨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른바 「공동관리」라는 획일적 제도로 실시되고 있는 대입 예체능계 실기고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엊그제 이틀동안 중앙일보에 보도된 각종 입학 부조리 사례를 보면 이런 입시제도와 교육자 밑에서 어떻게 예체능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지난 80년도부터 실시한 예체능계 실기고사의 공동관리제도는 그 나름대로 부득이한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실기를 중요시하는 예체능계는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자칫 특정한 수험생에게 「유리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래서 문교부가 지정한 다른 대학교수들이 채점을 하도록 한 것이 바로 이 제도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의혹과 부조리의 온상이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돈이 없으면 못하는 이른바 레슨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현 제도에서는 교수들의 레슨이 과외라 해서 금지돼 있지만, 예체능계 고교에서는 예외적으로 이것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문고의 예체능계 지망생들은 어떠한 편법을 써서라도 교수들의 레슨을 받고자 한다. 실제로 이들의 개별지도를 받지 않고서 대학에 진학하기란 약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 하다.
이런 제도상의 모순은 결국 유명 또는 유명교수들의 레슨비만 올려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1시간에 30여만원씩 하는 비싼 레슨비를 내고도 최소 1년이상 지도를 받아야만 바라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모양이다. 30만원이면 웬만한 일반기업 중견사원의 봉급과 맞먹는다.
듣기로는 외국의 일류대학 교수나 교향악단의 수석 주자도 시간당 레슨비가 25∼3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레슨비는 부끄럽게도 가히 「국제적 수준」이다. 이 같은 금전만능 풍조가 예체능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문제는 현재의 공동관리제도를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우선 최선의 방법은 예체능계 신입생 선발을 하루 속히 대학 자체에 맡기는 길이다. 자기가 가르칠 제자를 남이 뽑는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 있다.
만부득이 차선책을 택한다면 공동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즉 채점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시험전날부터 외부와 차단, 실기고사장에 바로 들어가도록 하거나, 아니면 교수를 바꿔가며 실기고사를 이틀에 걸쳐 실시함으로써 채점을 이원화하는 방법이다.
그래도 부정과 비리가 발견되면 해당자를 가러내어 공개하고 엄중히 문책도 해야 한다. 현 입시제도는 「공동」이란 미명 때문에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하고 그래서 더욱 부조리가 횡행한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예체능에 한해 레슨규제를 풀고 공개적으로 제자를 지도하도록 해야한다.
예능이나 체육은 혼자의 독습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또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재능 있는 제자를 진작 발굴해 떳떳하게 키울 수 는 풍토가 조성돼야만 앞으로 우리의 예술문화와 체육문화의 향상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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