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60·구속)·정유라(20)씨의 독일 생활이 담긴 사진(본지 11월 11일자 1, 3면)은 지난 6월 23일에 촬영됐다. 최씨의 생일인 이날 그가 인수한 비덱 타우누스 호텔에서 개업 파티가 열렸다. 독일 현지 주민으로부터 입수한 이 사진들에서 최씨 모녀는 주변 인물들과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 속 인물들의 도움으로 독일에 ‘제2의 근거지’를 만들려 던 최씨 모녀의 15개월간 행적을 살펴봤다.
◆승마장 별채, 순탄치 않았던 정착=최씨는 지난해 봄 독일행을 기획했다. 최씨와 20여 년의 친분이 있는 교민 데이비드 윤이 ‘현지 법인 설립→영주권 획득→거주지 마련→수행인력 숙소 구입’ 등의 큰 그림을 짰다. 그와 친분이 깊은 현지 박승관 변호사가 최씨의 첫 독일 현지 법인 ‘코어스포츠’의 설립(지난해 7월)을 도왔다. 석 달 뒤 최씨 모녀는 프랑크프루트 인근 예거호프 승마장 별채를 첫 거주지로 삼았다. 독일어를 못하는 최씨 모녀를 대신해 데이비드 윤이 이 계약을 주도했다.
최씨 모녀의 독일 생활은 간단치 않았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정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한 살배기 어린아이, 개 15마리, 고양이 5마리와 함께 생활해야 했다. “집을 워낙 지저분하게 썼다. 어린아이 예방접종도 제때 하지 않아 보건당국이 조사를 나온 적도 있다”는 게 승마장 대표의 증언이다. 정씨는 승마 훈련도 하지 않았다. 모녀는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나섰다. 인근의 한인식당 종업원은 “최씨 일행이 지난해 10월 두세 차례 식사하러 왔다. 주로 부동산 구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비덱 호텔에서의 임시 거주=최씨 모녀는 승마장 별채 거주 두 달째인 11월 말 짐을 챙겨 나갔다. 비덱 타우누스 호텔 인수 직후였다. 이 무렵 40대 한인 여성 박모씨가 호텔 매니저로 채용됐다. 데이비드 윤과의 친분으로 최씨의 ‘독일 사단’에 합류한 것이었다. 최씨 모녀는 이 호텔에서 수개월간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삶은 불안정했지만 최씨의 계획은 하나씩 진행됐다. 코어스포츠의 사명을 비덱스포츠로 변경하면서 대표에 정씨의 승마 코치인 크리스티안 캄플라데를 앉혔다. 정씨는 3개월간 중단했던 승마대회 출전을 올해 2월에 재개했다. 이 무렵 한국에선 미르재단(지난해 10월), K스포츠재단(올해 1월)이 설립됐다. 최씨는 올해 3월 현지 법인(더블루K)을 추가로 설립했다. 정씨는 잠시 한국에 왔다가 4월 30일 다시 독일로 갔다.
◆슈미텐에서의 삶, 그리고 도피=최씨 모녀는 슈미텐 지역의 단독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최씨 모녀가 쓸 가구와 세간살이 등은 살림을 도와 온 박씨가 구입해 줬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이사 시점은 5월께로 추정된다. 한 주민은 “최씨 모녀가 어린아이와 함께 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예거호프 승마장 별채선 두 달 거주
비덱 호텔 인근 이사 뒤 생활 안정
정유라 올 2월부터 승마대회 출전
최씨, 딸·손자와 자주 산책도 다녀
“정씨는 엄마와 달리 아이에 무관심”
평온한 독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한국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사태가 긴박해지자 최씨는 9월 초 한국에 들어왔다가 9월 말께 다시 독일로 갔다. 최씨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고 10월 초 짐을 싸 떠났다. 집 안엔 챙기지 못한 어린아이 신발 여러 켤레와 여성 부츠 등이 남아 있었다. 집 밖 쓰레기통에는 정씨의 개인 정보가 담긴 문서도 발견됐다. 황급히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이후 최씨 모녀는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 최씨 홀로 지난달 30일 영국 런던을 거쳐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다음 날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섰다. 최씨 모녀의 변호인은 “정씨는 아직 독일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행방이 확인되고 있지는 않다.
윤호진·이기준 기자 yoong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