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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절반은 강남, 가성비 좋은 맛집은 종로·중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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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쉐린 가이드’로 본 서울 미식 지도

가성비 좋은 맛집은 종로·중구에, 파인 다이닝(fine dining·고급 코스 요리와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식점) 레스토랑은 강남구 도산공원 사거리 일대에-. ‘빨간 책’ 한 권이 다시 그린 서울의 미식 지도다.

지난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2017 서울편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의 미슐랭 타이어사가 여행 안내용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116년 전통의 ‘미식 바이블’이다. 한국은 가이드가 출간된 아시아 네 번째 국가로, 총 24개 레스토랑이 별을 땄다. 별 1개(요리가 훌륭한 집)가 19곳, 2개(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집)가 3곳, 3개(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집)가 2곳이다. 이에 앞서 지난 1일 발표된 ‘빕 구르망(Bib Gourmand·가성비 좋은 맛집)’에는 총 36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을 포함해 미쉐린 평가단이 주목한 서울 시내 147개 레스토랑이 260쪽짜리 책 한 권에 담겨 나왔다.

147곳 중 127곳 4개 구에 몰려
강남 60, 종로 30, 중구 22, 서초 15곳
동대문·성북·동작구 등 15개 구는 ‘0’

식당 수에 비해 등재 많은 강남
학동사거리 인근에 ★받은 곳 11개
“고급 음식점 많다 보니 경쟁 치열”

특급 호텔 식당들 뜻밖에 적어
‘라연’ ‘피에르 가니에르’ 등 3곳만 ★
외식에 투자 적은 강남권은 없어

보통 미쉐린 가이드라 하면 별 레스토랑만 생각하지만 이렇게 책에는 147개 음식점이 가나다순으로 등장한다. 별이나 빕 구르망 표시 외에도 다른 픽토그램(그림문자)이 붙어 편안한 분위기의 정도라든가(포크 1~5개) 훌륭한 와인리스트 보유(포도송이) 등을 일러준다. 누구라도 순서대로 훑으면 본인이 원하는 분위기와 가격대의 음식점을 찾을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가 프랑스에서 출발한 미식 평가서이고 원래 여행객을 위한 안내서란 점을 감안할 때 서울 맛집 147곳의 면면은 평균적인 한국인이 생각하는 맛집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명단과 위치만 봐도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전체 86%인 127곳이 강남(60곳)·종로(30곳)·중(22곳)·서초(15곳)구 4개 자치구에만 몰려 있다. 용산(8곳)·마포(5곳)·영등포(4곳)구가 뒤를 이었고, 송파·서대문·광진구는 각각 1곳만 이름을 올렸다. 이들 10개 구를 제외한 동대문·성북·동작구 등 15개 구는 아예 한 곳도 없다. 제로(0)다. 미쉐린 측은 가이드가 세계 동일한 기준으로 음식점을 평가한다고 강조하는데, 그에 따르면 여행자 입장에서 맛만 기준으로 했을 때 15개 구는 가볼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얘기다.

강남구는 빕 구르망(6곳) 개수만 종로구(12곳)와 중구(7곳)에 뒤졌을 뿐 별(12곳)과 기타 추천(42곳) 레스토랑에 가장 많이 등재됐다. 일단 강남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서울의 식당 11만9680개 중 9.6%인 1만1492개가 이곳에 있다(2016년 11월 서울시 통계). 그 다음 식당이 많은 곳은 마포구로 7300여 개가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강남구 음식점이 질적으로도 두드러진다고 판정했다. 식당수 대비 미쉐린 등재 건수로만 봐도 상대적으로 강남에 맛집이 많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별을 받은 레스토랑 24곳 중 12곳이 강남에 몰려 있다. 특히 테헤란로의 제주 흑우집 ‘보름쇠’(별 1개)를 제외한 11개가 도산대로·언주로 일대, 다시 말해 학동 사거리에서 반경 700m에 밀집해 있다.

레스토랑 종류도 다채롭다. ‘가온’(별 3개) ‘권숙수’(별 2개) ‘정식당’ ‘밍글스’ ‘이십사절기’ 같은 모던 한식당뿐 아니라 ‘리스토란테 에오’ ‘알라 프리마’(이상 이탈리안) ‘라미띠에’ ‘보트르메종’(이상 프렌치) 등 양식당과 스시집 ‘코지마’, 진주식 한정식당 ‘하모’ 등을 아우른다(이상 별 1개).

강남 파인 다이닝이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왜일까.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는 “고급 레스토랑 수가 많다 보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섬진강 참게 등 제철의 진귀한 식재료로 고급 한식 코스를 내는 ‘권숙수’는 점심 세트가 5만5000원, 저녁 세트가 10만~15만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미쉐린 상륙 전부터 늘 예약이 밀려 있고, 평일 점심에도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다. “비즈니스 접대뿐 아니라 해외여행 및 미식 경험이 많은 ‘사모님’들의 계모임·동창회가 자주 열린다”고 권 셰프는 설명했다. 이들 대부분이 자가용 이용자인데 강북 음식점 중엔 발레파킹은커녕 차를 대기도 어려운 곳이 많아 자연스레 강남 음식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반면 빕 구르망은 종로구와 중구에 19곳이 몰려 전체(36곳)의 절반이 넘었다. 특히 개화기부터 상권이 발달했던 인사동·낙원상가 인근에 자리 잡은 노포(老鋪)가 여럿 포함됐다. 1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문 설농탕’, 1970년 개업해 3대째 내려오는 만두집 ‘개성만두 궁’ 등이다. 기타 추천(27곳)까지 식당 범위를 넓히면 종로·중구 식당 가운데 총 46곳이 책에 이름을 올렸는데, ‘필동면옥’ ‘우래옥’ 등 냉면집만 5곳이다. 박정배 음식평론가는 “외국인 평가단 기준에서 ‘맛은 있지만 별을 줄 정도의 격식은 아닌 집’들을 뽑은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 미쉐린은 모던 한식을 더 높게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쉐린 발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곤란을 겪던 파인 다이닝 업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울상을 짓는 곳도 있다. 특급호텔들이다. 전반적으로 호텔 레스토랑들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별을 받은 레스토랑 24곳 중 호텔 레스토랑은 딱 3곳이다. 신라호텔은 한식당 ‘라연’이 별 3개를 받아 자존심을 지켰지만 그동안 최고급으로 일컬어져 온 중식당 ‘팔선’과 일식당 ‘아리아케’ 모두 별은커녕 아예 책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롯데호텔 역시 프랑스 특급식당의 분점격인 ‘피에르 가니에르’가 별 2개를 받았지만 ‘라연’과 라이벌이라던 한식당 ‘무궁화’는 추천리스트에 만족해야 했다. 웨스틴조선호텔 역시 ‘스시조’(일식) ‘홍연’(중식)이 기타 추천에 포함되는 데 그쳤다. 동대문 메리어트 호텔은 단 한 개의 레스토랑도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개장 1년밖에 안 된 포시즌스호텔은 중식당 ‘유 유안’이 별 1개를 받은 것을 비롯해 ‘키오쿠’(일식) ‘보칼리노’(이탈리안)가 추천 리스트에 올라 호텔 가운데 최대 수혜자가 됐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강남 호텔의 부진이다. 최고 상권으로 일컬어지는 강남 일대 특급호텔은 별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그나마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 34층 프렌치 레스토랑 ‘테이블 34’와 1층 로비의 일식당 ‘하코네’가 나란히 추천을 받았다. 다수의 별 레스토랑이 강남구에 몰린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레스토랑 평가서 ‘블루리본’을 11년째 발간해 온 김은조 편집장은 “강남 호텔들이 외형은 키워왔지만 외식업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급성장하면서 아예 경쟁을 포기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최규완 경희대 호텔관광대 교수는 “호텔 식음사업이 브랜드 마케팅 효과가 높고 초상류층 관광객 유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호텔들의 각성과 효과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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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기자·오준엽 인턴기자 theother@joongang.co.kr

[S BOX] 단감김치·무전…진주 음식 내는 ‘하모’ 구자홍 LS회장 단골

지난 11일 오후 1시 서울 강남의 진주 음식 전문점 ‘하모’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예약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음식평론가도 예상치 못했던 깜짝 별 획득(1개)으로 화제를 모은 하모는 박경주(58·여) 대표가 2012년 열었다. 고향이 진주인 남편이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서울에서 제대로 맛보기 어려우니 직접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며 권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경상도 음식 장사는 무리”라며 말렸다. 박 대표는 “진주는 지리산과 남해가 가까워 예부터 식재료가 풍부하고 조선 때부터 사람들이 몰려 음식 문화도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동교동에 비빔밥연구소를 열고 1년 동안 레시피를 연구했다. 아흔 넘은 시어머니 입에서 “됐다”란 말이 나올 때까지 종일 비빔밥을 만들었단다.

하모의 음식은 서울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하다. 감으로 담근 단감김치, 채 썬 죽순·버섯·새우 등을 겨자 소스로 묻혀낸 조선잡채, 무전 등 평소 볼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비빔밥도 그렇다. 기름에 볶은 나물에 고추장을 넣는 보통 비빔밥과 달리 진주비빔밥은 곱게 채 썬 나물을 삶아 물기를 짜낸 후 조선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해 올려 담백하다. 여기에 육회, 속대기(자연산 돌김)와 보탕(바지락·육회를 곱게 다져 만든 천연양념)을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쇠고기와 내장, 무를 넣은 쇠고기국도 함께 낸다. 구자홍 LS그룹 회장 가족과 배우 이병헌·이민정 부부가 단골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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