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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딸 걱정해주자 왈칵울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둘째딸 광숙양 (14) 의 불편한 다리를 눈여겨보고 「염려가 많겠다고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자 김만철씨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읍니다. 대화가 풀리기 시작했어요.
불안과 공포로 「한국행」을 머뭇거리는 김씨 일가족에게 진실을 몸으로 보여주고 북한탈출동지로서 우정어린 설득을 펴 귀순을 결심케한「밀사」 이웅평씨(32·공군소령).
83년2월 미그기를 몰고 귀순해 이제는 떳떳한 한사람의 자유시민으로 자리잡은 이씨는 일본의 쓰루가 (돈하)와 대만에서 두차례 김씨일가를 만나 자상한 조언을 해주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쓰루가항 와카사호에서 나고야주재총영사와 함께 김씨일가를 첫대면했고 8일 대만에서 이번엔 김씨가족의 요청으로 두번째만나 하룻밤 하루낮을 같이지냈다는 것이다.
9일밤 이씨를 시내 자택앞서 10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만났다.
일본항에 대해서는 입을다물었으나 대만항은 털어놓았다.
-대만에는 언제갔나.
▲6일낮이다. 그동안 제대로 못자 오늘 (9일) 낮에야 눈좀 붙였다. 집에는 8일밤12시쯤 들어왔다.
-김씨일가는 어떻게 설득했나.
▲김씨가 일가족을 동반, 탈출한 것을 보고 가족을 지극히 사랑한다는걸 알았다. 청률에 있는 금책공군대학을 4년간 다녀 청진을 잘 알기때문에 청률의 ××거리·○○상점등 친밀감을 주는데서부터 시작해 광숙양의 다리발육문제등 가족문제로 대화의 실마리를 풀었다.
한국사람들은 뭐니뭐니해도 혈연과 지연에 약한것 아니냐 (웃음). (이소령은 자신이 광숙양의 다리걱정을 해주자 김씨가 울음을 터뜨리며『어릴때 영양실조에 걸린걸 제대로 먹이지못해 저렇게되고 말았다』 며 『의사인 아비로서 평생의 한』 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탈출동기는 무엇이라고생각했나.
▲4년전 내가 월남했을때와 동일한 것같았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은 대부분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북한체제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만서 만났을때 김씨일가의 심리상태는I.
▲서울로 오기로 결정해놓고도 북한공작원의 테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또 남한에 넘어오면 간첩들이 이들의 목을 베어간다는 식의 북한측 선전공작에 익숙해있어 두려움을 없애주는데 큰애를 먹었다.
-특히 김씨의 처남들이 한국에 오는 것을 끝까지 주저했다는데-.
▲이들은 북한의 세뇌교육탓에 「조국을 배반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것 같았다. 이들이 진정한 조국은 한국이란 것을 인식하는데는 내경험으로 볼때 2년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설득작업에 나설때 자신이 있었나.
▲그렇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은 그쪽 체제에 회의를 강하게 품고 있어 남한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해주면 쉽게 납득한다.
(이씨는 김씨일가를 두 번째 만나면서 귀순용사들의 귀순당시 신문스크랩, 그뒤 서울에 정착해 사는 동안의 가족앨범, 그리고 한국소개책자, 한국생활상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등을 준비했으며 김씨일가는 이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못하더라고 전했다. )
-김씨일가 망명을 보고 느낀 소감은.
▲나는 혼자 월남했는데 비해 김씨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탈출해 김씨의 가족애에 큰 감동을 느꼈다. 김씨일가가 제3국으로 간다고 할때는 어떻게 할수없어 가슴이 답답했지만 내가 설득작업차 갈수있게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때 김씨가 당신을 쉽게 알아보던가.
▲ 그렇다. 내가『이웅평입니다』고 인사와 소개를 하자 김씨는 『배에서도 이선생얘기는 들었다』 며 매우 반가와했다. 북한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비행사가 월남했다는 소식은 빅 뉴스여서 귀엣말로 전해져 북한주민들도 대부분 알고있다고했다. 인간은 비밀을 들으면 알리고 싶은것이 본능아닌가 (웃음).
-김씨가족에게 하고싶은 말은
▲많은 것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경험상 문화적 이질감 극복에 8개월, 정치·경제체제 이해에 2∼3년 걸렸다. 한국의 정치·경제·문화등을 두루 살피다보면 어느새 한국을 조국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할수 있다는건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에서는 보위부에 끌려갔다면 부모형제라도 소식조차 알수없는 실정이다.
이씨는 현재 서울강남의 아담한 아파트에서 부인 박선영씨 (23) 와의 사이에 갓 돌이 지난 딸 나영양을 두고 단란한 일가를 이루었다. 중앙대 정외과 2학년에 재학중. 공군중령진급도 눈앞에 두고있다. <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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