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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쓰레기더미 뚫고 피어난 ‘생명의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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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의 하이라이트는 하늘공원 억새밭이다. 12월 중순까지 은빛 억새의 장관이 펼쳐진다.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의 하이라이트는 하늘공원 억새밭.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는 마포구 상암동 매봉산(94m)을 거쳐 월드컵공원 일대를 훑는다. 14.4㎞ 길이의 걷기여행길을 아우르는 타이틀이 ‘난지’와 ‘생명’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모래섬에서 쓰레기 산으로, 다시 생태공원으로 변모한 곡절의 세월이 난지도(蘭芝島)에 뿌리내려 있다. 월드컵공원 일대를 수놓은 억새밭에는 쓰레기 더미를 뚫고 피어난 생명의 기운이 물결치고 있었다.

쓰레기 산에서 생명의 길로
붉게 물든 화살나무 잎.

붉게 물든 화살나무 잎.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매봉산 들머리가 바로 이어진다.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는 매봉산에서 시작해 난지천공원~노을공원~하늘공원~평화의공원을 지나 월드컵경기장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약 10분 돌계단을 올라 매봉산 전망대에 올라섰다. 월드컵공원 일대가 드러났고 멀찍이 하늘공원도 보였다. 쓰레기 매립장의 기억을 잊은 듯이 수풀이 무성했다.

 꽃이 많아 중초도(中草島), 철새가 자주 드나들어 문섬(門島)이라 불리던 곳. 난지도는 본디 섬이었다. 정연희의 1984년 소설 『난지도』는 1950년대의 난지도를 이렇게 묘사한다.

“나룻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았을 때 난지도는 맑은 샛강을 푸른 띠처럼 두른 채 난꽃과 갈대밭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촌티가 나기는 했지만 예쁘게 가꾼 시골 여인 같은 모습이었다.”

가을빛이 드리운 난지천.

가을빛이 드리운 난지천.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남은 난지도의 기억은 쓰레기다. 난지도는 서울의 쓰레받기였다. 78년부터 93년까지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며 약 1억t의 오물이 섬에 쌓였다. 해발 7m의 저지대는 15년 만에 해발 90m에 달하는 두 개의 쓰레기 산이 됐다. 그 두 쓰레기 산이 지금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다. 매봉산 자락의 난지천은 오물에서 고인 물이 흘러들어 모기 떼가 들끓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난지도 안정화 사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96년이다. 하수 처리시설과 물막이벽을 짓고, 쓰레기 산을 흙으로 덮고, 풀과 나무를 심는 대공사가 이어졌다. 난지도가 월드컵공원이란 새 이름을 얻는 것은 2002년이었다.

억새 천국을 거닐다
하늘공원 일몰 억새 풍경.

하늘공원 일몰 억새 풍경.

매봉산을 내려와 월드컵공원 북단을 흐르는 난지천변을 걸었다. 버드나무와 갈대가 드리운 천변을 지나며 좌측 언덕을 올려다봤다. 수목으로 울창한 모습에서 쓰레기 산의 모습은 없었다. 월드컵공원 박미성(46) 녹지조경팀장이 이해를 도왔다.

“녹지화사업을 시작할 때 여러 종자의 씨를 무작위로 뿌렸어요. 어떤 싹이든 일단 틔워야 했으니까요. 덕분에 지금은 야트막한 동산인데도 나무의 종류도 숲의 빛깔도 다 달라요. 야생처럼.”

난지천에서 노을공원을 넘어 메타세쿼이아길에 드니 가을빛이 쏟아졌다. 죽죽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누르스레 익어가고 있었다. 월드컵공원은 포장길이 대부분인데, 1㎞ 길이의 메타세쿼이아길만 흙길이었다. 낙엽 깔린 흙길을 밟으니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하늘계단.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하늘계단.

하늘공원 문턱에 다다랐다. ‘갈 지(之)’ 자 형태의 하늘계단을 오르자 은빛 장관이 펼쳐졌다. 하늘공원의 상징이 된 억새밭이다. 억새밭은 약 19만㎡(5만7000평)에 달했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는 부산의 이민희(59)씨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옛날에는 난지도로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었다는 어르신 말을 믿지 못했어요. 저한테 난지도는 늘 냄새 나는 쓰레기 더미였으니까. 난지도가 살아있었네요. 서울의 시궁창이 서울의 꽃이 되었네요.”

한강에서 분 바람에 억새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머리를 풀고 춤을 추는 것 같기도,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것 같기도 했다. 억새밭 안길로 들자 사방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눈이 시렸다. 해발 98m의 대초원에서는 오로지 억새와 하늘만 보였다.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 길 정보

걷기여행 포털이 평가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의 난이도는 ‘중(中)’이다.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14.4㎞)를 완보하는데 최소 4시간, 월드컵공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6시간은 족히 필요하다. 평화의공원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2시간 무료.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오가는 맹꽁이전기차(왕복 3000원)도 있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일대는 세찬 강바람이 늘 따라다녀두툼한 옷이 필수다. 월드컵공원 02-300-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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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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