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꼭 이래야만 하는가 - 초긴장 정국의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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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주말 온 국민의 시선은 서울 한복판 명동성당 일대로만 쏠리고 있다.
아침부터 벌써 경찰이 쳐놓은 저지선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민들과 경찰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다.
명동은 마치 「게리·쿠퍼」가 주연한 영화 『하이 눈』의 마지막 장면이라고나 할까.
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추도한다는 모임이 어떻게 되어서 이처럼 엄청난 중압감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짓누르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다.
사건의 성격상 예사로 지나칠 수 없다는 점은 누누이 지적해 온 바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경과 강경의 한치 양보없는 대치는 아무래도 박군 사건의 핵심과는 동떨어져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오늘의 상황은 마치 정치「게임」은 없어지고 정치「투쟁」만이 판을 치는 형국이다. 정치는 당연히 국민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 기능을 해야함에도 오히려 국민들을 한층 불안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야권이 박군 사건을 정권탈취의 호기로 이용하러하고 있다면 공권력을 행사하는 폭에선 집회자체를 원천 봉쇄하면 했지 정권을 내놓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백의 하나라도 야당의 뜻이 그렇다고 해도 여당이나 정부가 좀더 세련된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사태는 지금처럼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무어라 자신을 변명하고 어떤 명분을 내세우건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비칠뿐이다.
우리 국민은 최근 들어 완충역을 해야 할 정치가 뒷전에 밀려나고 힘과 힘이 정면으로 적나라하게 맞닥뜨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도했다. 이른바 권양 성고문 폭로규탄대회 때와 작년 11월29일의 신민당 개헌추진대회 때다. 다시는 그런 남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고 보일 수 없다는 게 온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한데 그와 같은 국민적 여망은 또 한번 물거품이 되었다. 주최측은 추도회가 경찰저지로무산되면 오는 21일 다시 열 것을 다짐하고 있고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방식의 대응을 할지는 불을 보듯 환하다.
박종철군이 피어보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에 비통해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점 대다수 국민은 물론 정부나 여당쪽 사람들의 심경도 같으리라고 믿는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대회 강행」과「과잉 저지」로 온 나라를 초긴장으로 몰아넣는 방법 말고 달리 박군의 죽음을 추도하는 길은 없는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가 40여 개에 이른다지만 그 핵심은 역시 정치인이며 그 동기 또한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회를 주도하는 의도가 달라지면 대회의 순수성도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군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한결같다 해도 대다수 국민들은 추도회가 거리의 격돌로 번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 또한 공권력을 동원한 저지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리력에는 한계가 있고 설혹 그것이 일시적인 해결의 효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일수는 없다.
사건이 정치화된 이상 치유의 방법도 정치력을 통해 찾아야 함은 당연한 요청이다. 무엇보다 오늘의 이 원시적인 대결의 모습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비쳐질지 큰 걱정이다.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고 힘의 극한대치로만 치달을 경우 그 피해는 비단 명동지역의 상인들뿐 아니라 온 국민에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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