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도소에도 인권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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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교도소로 돌아가는 「개방교도소」가 등장한다.
주로 교통사고를 낸 과실범을 수용할 이 교도소는 성공여하에 따라 앞으로 확대실시 할 것으로 보여 교정행정의 획기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교도소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죽지 못해 사는 아주 고약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비좁은 방안에 콩나물시루같이 죄수들을 마구 집어넣어 다리도 제대로 못 펴고 새우잠을 자야하고 사형이 예사로 횡행하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곳에서는 아예 인권이란 용어는 지극히 사치스러운 낱말이며 육신을 온전하게 보존만 하고 나와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도소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오죽해서 교도소를 범죄양성소 운운했겠는가. 사실 강도·살인 등 강력범들의 상당수가 경찰에 검거된 후 범죄수법을 교도소에서 익혔다고 진술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만 봐도 교도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익히 알 수 있다. 재소자들간의 린치나 범죄수법의 교습행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도관에 의한 인권유린도 계속 말썽이 되어왔다. 며칠 전에는 구속학생 7명과 변호인단 22명이 서울 영등포교도소 교도관등 13명을 상대로 독직·폭행혐의 재정신청을 냈고 공안사범들의 「고문주장」이 계속되어 왔다.
교도소에서 가혹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앞으로 조사결과 밝혀지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재정신청을 낸 재소자들은 소란을 피운다고 교도관들이 지하실로 끌고 가 폭행과 속칭 비녀꽂기 등 가혹행위를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실에는 징벌 방이라는 것을 따로 두어 며칠이고 가두어 고통을 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도소는 외부세계와 철저히 차단되어있고 고문으로 상처가 생기더라도 아물 때까지 장기간 격리할 수도 있어 무방비 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가혹행위에 관한 한 교도소가 하나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어 교도관에 대한 인권의식 함양교육과 지도, 감독이 절실히 요구된다.
일반 교도소 안에서 인권의 보장과 법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모처럼의 개방교도소 신설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교도소는 현대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설치해 놓고있는 사회통제 장소다.
사회를 파괴하고 인간을 훼손하고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가져오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교도소가 있는 것이다.
위험시되는 범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그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와 개인에게 해를 끼친 범죄인에게 형벌을 통해 사회정의를 구현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옛날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철저한 응징과 보복의 수단으로 교도소가 이용되었지만 현대 교정행정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교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법을 준수하는 건전한 시민으로서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주된 이념이다.
이처럼 「교화」가 목표고 이념이라면 모름지기 교정행정의 방향도 이에 부합해야할 것이다. 개방교도소만이 인권을 존중하는 수범장이 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교도소가 인간을 아끼고 사람이 넘치는 교육장이 되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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