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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박지만의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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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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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은 머리를 감싼다. 가슴은 찢어진다. 누나의 처지는 참담하다. 그것은 고통으로 그에게 전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벼랑 위로 몰렸다. 지난 초여름 그는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최순실이 하는 꼴 때문에 큰일이 터질 것 같아. 그런데 누나는 최순실이 하는 짓은 괜찮고, 진짜 충성하는 사람들은 버리고 있으니.” 그는 박 대통령의 기이한 편애를 원망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 불길한 예감을 알릴 수 없어서다.

“정윤회 사건이 기회였는데”
동생의 예감, 참담한 현실로
박 대통령 조카 세현의 의문
“고모가 왜 나를 안 부르지”
최순실·문고리의 청와대 독점
‘결자해지’가 대통령의 출구

박지만은 청와대에 가지 못했다. 최순실과 문고리 일당은 그를 차단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고 한다. “세현이가 내게 ‘고모는 왜 나를 안 부르지’ 하고 물어봐서, ‘고모가 바빠서 그래’라고 궁색하게 넘겼는데.” 그의 말에 비애가 젖어 있었다. 세현은 박지만의 장남이다. 박 대통령은 2005년(당 대표 시절) 이런 감상을 토로했다. “동생 지만이가 아이(세현)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순간 너무 큰 기쁨에 말문이 막혔다. 벅찬 감동을 느꼈다. 우리 가족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박지만(EG 회장)·서향희(변호사) 부부는 아들 넷을 뒀다. 한 살배기 쌍둥이도 있다.

박 대통령의 사과문(4일)에 이런 대목이 있다.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발언의 반응은 냉소다. 민족중흥회 출신 김인주씨는 “형제애를 거부하니, 그 업보로 최순실이 비선 실세로 설쳐대지 않았느냐. 설날, 추석에 박 대통령이 쌍둥이 조카를 안고 있었다면 그 모습이 얼마나 따뜻하게 보였을까”라고 했다.

박지만은 “누나가 나를 안 부르겠지만, 불러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비감(悲感)에 애정이 담겼다. “그래도 누나가 잘돼야 하는데… 아버지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데….” 그의 근심은 이젠 잔인한 현실이다. ‘2017년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계획은 흔들린다. 사태는 엄혹하다. 그가 품었던 원망과 비애조차 사치스럽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계속 폭로된다. 대통령은 경멸과 야유의 대상이다. 하야, 탄핵의 외침이 거리를 누빈다.

그 상황은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그 자리에서 박지만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고 한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문고리들을 정리하고 최순실을 멀리할 수 있었는데.” 기회는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이다. 그것은 권력 재출발의 호기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문고리(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들을 옹호했다. 기회와 행운은 험악한 얼굴로 다가온다. 그걸 낚아채지 못하면 반전의 상황이 온다. 불행은 미소로 엄습한다.

그때가 권력의 비극적 전환점이었다. 청와대는 궁정(宮廷)이 됐다. 최순실과 3인방들의 세상은 확장됐다. 그들은 장막을 쳤다. 그들은 그 뒤에서 활개쳤다. 대통령의 공간을 독점했다. 대통령과 장관·수석의 독대(獨對)는 희귀해졌다. 청와대의 작동 방식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박 대통령은 세상 물정과 멀어졌다.

최순실과 문고리의 방어망은 교묘했다. 자신들의 역량 부족과 비행을 폭로할 사람은 배척했다. 자신들을 견제할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첫 대상은 박지만 부부였다. 그들은 이들 부부의 동향을 보고했다. 내용은 부풀리기와 음해로 가득했다. 그들은 하수인을 물색했다. 배역의 조건은 출세욕이다. 민정수석 우병우는 조건에 맞았다. 우병우의 신분 재상승 야망은 유별났다. 그의 처세는 까칠하고 영악했다. 청와대의 우병우 인물평엔 이런 말이 붙는다. “정윤회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그 매끄러움은 봉합과 은폐의 기술이다.

최순실의 탐욕은 거침없었다. 권력 탈선은 대담했다. 최순실과 패거리는 문화체육계를 유린했다. 그들은 재벌의 팔을 비틀었다. 뭉칫돈이 그들 재단에 쏟아졌다. 정책조정수석 안종범은 그 대열에 앞장섰다. 우병우의 민정수석실은 재벌의 약점을 선별했다. 그 고급 정보가 그들에게 흘러갔다. 문고리들은 복수를 작심했다. 자기들을 무시한 사람을 골랐다. 유승민 의원은 그들의 엉성한 보좌를 지적했다. 그들을 ‘청와대 얼라’라고 했다. 유승민은 핍박을 당했다. 권력의 단물이 흘러나왔다. 친박 강성파들은 그 맛에 흥청댔다.

박지만은 독백처럼 내뱉었다. 올해 초 지인들과 나눈 대화다. “대통령이 고집이 세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일당들이 누나를 고집 세게 만들었다”-. 그 말은 회한이 됐다. 난국의 최종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비상시국은 이어진다. 내치의 미련은 의미 없다. 권한 포기는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검찰의 대통령 수사가 예고돼 있다. 그 장면은 고해성사여야 한다.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과의 악연은 질기다. 조사현장은 그것을 끊는 모습이어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만이 출구를 찾는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