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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뭍도 마음놓고 못 먹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품들에 대해 막연한 공포심과 걱정을 가져온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치 다음으로 우리의 친숙한 반찬 구실을 해오고 있는 콩나물의 중금속 오염은 과거에도 빈번히 문제가 돼왔는데 아직도 개선을 않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식품위생 행정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콩나물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무엇인들…」하는 자괴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콩나물에서 인체에 해로운 중금고의 일종인 수은이 허용 기준치의 무려 16배가 검출됐다는 한 대학교수의 발표를 보고 거듭 보건당국의 불성실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한다.
유해 콩나물은 생산업자들이 성장을 촉진시키고 변질을 막기 위해 인체에 해로운 유기수은제 농약으로 기르고 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 종류의 농약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심지어 목초지에 까지도 우유에서의 잔류 가능성을 우려하여 유기수은제는 물론 이요, 유기린·유기비소제 농약의 사용을 엄금하고 있다.
하물며 직접 부식으로 사용되는 콩나물을 이런 유독물질로 재배했다는 것은 음식물에 독을 섞어 판 거나 다름이 없다.
유기수은이란 다른 중금속 성분과 마찬가지로 인간 치사량(lg)에 못 미치는 미량이라 해도 반복해서 섭취하면 몸 안에 축적돼 결국은 신체나 정신에 이상을 가져오고 심한 경우 목숨까지 앗아가는 무서운 독성을 지니고 있다.
1950년대초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미나마타병」이 바로 이 유기수은 중독 증세였다.
유기수은의 독성이 밝혀지기 전에 일어난 피해야 무지의 소치로나 돌릴 수 있겠지만 해독을 빤히 알면서 이를 식품에 사용하는 것은 이른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물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번 유해콩나물이 이를 감시하고 단속해야 할 환경당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대학교수에 의해 발견됐다는 사실에도 문제는 있다.
당국은 유해식품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제조·거래되는데도 단속은 커녕 발견도 못하고 있으니 무슨 말로 변명을 할 것인가. 예산과 인력타령만 할게 아니라 이를 사전에 예방하고 단속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소임이 아닌가.
대부분의 야채나 과일이 농약 잔류의 개연성에 노출돼 있는데 잘 씻어 먹어라, 껍질을 두껍게 깍아 먹어라 하는 따위의 사후약방문 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어도 되는 일인가.
환경당국은 유해식품의 생산과정을 감시하고 검사와 단속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법규를 고쳐서라도 유해식품 제조업자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왜 못 보이는가.
또한 인체에 해로운 농약의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무공해 농약의 개발과 공급에도 지원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선진조국」을 운위하는 마당에 콩나물 하나 마음놓고 먹을 수 없대서야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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