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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정부 출범후 최대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민중의 힘」과 「국민화해정책」을 내세워 필리핀민주화작업을 추진하고 있던 「아키노」정부가 22일 발생한 대통령궁앞 유혈사태와 이에따른 정국혼란으로 출범 11개월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있다.
특히 이번 유혈사태는 민주화 마무리작업인 2월2일 실시예정인 신헌법 국민투표를 10여일밖에 안남기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좌익세력에 의해 이미 「피의 목요일」로 단정된 22일의 유혈사태는 도덕성회복과 국민화해를 내세웠던「아키노」정권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필리핀 유일의 좌익 정당인 인민당(PNB)과 최대노조인 「5월1일운동」은 이번 유혈사태로 『「아키노」의 손에 피가 묻혀졌다』며 정부군의 비무장시위군중에 대한 무차별 발포에 항의하기 위한 파업과 대규모시위를 26일 벌일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며 22일 시위릍 주도했던 필리핀농민운동(KMP)측은 산하70만명의 농민이 일체의 작물경작을 중단하는「농장파업」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유혈사태의 직접적 인원인이된 토지개혁문제는 「아키노」정부가 4백만 농민들이 모두 토지를 갖도록 한다는 장기목표아래 어느때보다도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사병까지 보유한 강력한 토지재벌들의 반대와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을 난제중의 하나다.
필리핀정치분석가들은 「아키노」정부가 농민콜의 토지분배요구를 어떻게 만족시키느냐에 18년에 걸친 공산세력과의 내전종식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보고있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것은 「아키노」정부측이 심혈을 기울여 공산세력측과 벌여오던 완전한 내전종식을 위한 평화협상의 결렬위기다.「아키노」정부는 작년12월10일부터 실시되고 있는 신인민군(NPA)과의 60일간 휴전을 계기로 18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영구적인 평화장치를 마련키 위해 NPA의 정치조직인 민족민주전선(NDF)측과 지난6일부터 평화협상을 벌여오고 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한채 이번 유혈사태를 맞았다.
NDF측은 이번 유혈사태가 군부의 음모에 의해 계획적으로 일어났다고 비난하면서 다시 지하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DF측 협상대표들은 마닐라의 협상장소에서 자취를 감추기전에 『「아키노」정부가 민주적 자유주의의 가면을 벗고 「마르코스」독재의 계승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아직 최종적인 평화협상의 결렬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상황변동은 「아키노」정부가 또다른 평화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모로 민족해방전선(MNLF)등 민다나오섬의 회교세력파의 화해노력에도 큰 손상을 보일 전망이다.
「엔릴레」전 국방장관으로 대표되는 우익보수세력의 도전도 더욱 거세질 것이 예상된다. 「엔릴레」는 이번 유혈 사태의 책임이 『군인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최고위층에 있다』며「아키노」대통령을 직접 비난하고 나섰다.
그동안 몇차례의 쿠데타세이 나돌아 마닐라정가의 우려의 대상이 됐던 군부를 배경에 둔 우익세력은 이번 사태를 그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좌·우익 양측으로부터 거센 압력을 받고 있는「아키노」정부의 시급한 당면과제는 우선 유혈사태의 진상을 밝혀 끓어오르는 정국불안을 진정시키고 신헌법국민투표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획득해 내는 일이라 하겠다.
다만 그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다는것이 「아키노」정부의 불행이다.
만약 「아키노」정부가 이같은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하면 필리핀정국은 또다시 작년2월과 같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며 그렇게되면 쿠데타등 돌발사태를 불러일으켜 「아키노」의 민주화 일정은 뒷걸음질치게 될것이 틀림없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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