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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얼음 강국들 한 방 먹였다, 백지선 ‘벌떼 하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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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유로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은 2014년 백지선 감독 부임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유로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은 2014년 백지선 감독 부임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은 한국축구 최고의 해였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당시 홈그라운드에서 승승장구하며 4강 신화를 썼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대표팀도 또 하나의 신화를 쓸 수 있을까.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상위권 입상을 노리는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백지선

백지선

캐나다 동포 백지선(47·영어이름 짐 팩) 감독이 이끄는 한국(세계랭킹 23위)은 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6 유로 챌린지 결승에서 헝가리(세계 19위)를 3-2로 꺾고 우승했다.

6개국 출전 유로챌린지 첫 우승
선수 전원 공격·수비 유기적 협력
역대전적 1승1무11패 헝가리 꺾어
2년 뒤 올림픽 상위권 입상 꿈 키워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오스트리아(세계 17위)에 사상 첫 승리(6-4)를 거뒀고, 결승에서 역대전적 1승1무11패로 절대열세였던 헝가리까지 제압했다. 6개국 친선대회인 유로 챌린지에서 한국은 첫 우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는 2014년 7월 백 감독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국은 아이스하키에 관한 한 오랫동안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었다. 국내 남자 성인 등록선수가 133명에 불과하다. 1982년 일본에 0-25 참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34년간 일본전 1무19패에 그쳤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2018년 평창 올림픽 본선진출권을 확보해 캐나다(1위)·체코(6위)·스위스(7위)와 조별리그 A조에 편성됐다.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 유명 블로거 ‘퍽 대디’는 “최근 겨울 올림픽을 2연패한 캐나다는 NHL 선수들이 불참하더라도 한국에 162-1로 승리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년 하위권이었던 한국을 백 감독이 환골탈태시켰다. ‘백지선 호(號)’는 지난 4월27일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상위 두번째 단계)에서 34년 만에 일본(20위)을 처음으로 꺾었다. 또 역대 최고 성적인 5위(2승1연장패2패)에 올랐다. 2010년 세계 랭킹 33위였던 한국은 10계단 올라 2016년 23위를 기록 중이다.

‘월드 클래스’ 백 감독의 지도 아래 선수들의 눈빛부터 달라졌다.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간 백 감독은 1991년 NHL 피츠버그 펭귄스 수비수로 뛰면서 아시아인 최초로 1991년과 92년 스탠리컵을 제패했다.

대표팀 공격수 신상훈(23·안양 한라)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미국 명문 하버드대 교수님에게 족집게 과외를 받는 기분이다. 감독님이 작전지시가 빙판에서 마법처럼 그대로 펼쳐진다”며 “예전엔 백인 선수들을 상대하면 기가 죽었는데 이제 감독님과 함께라면 어느팀과 맞붙어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축구의 토털사커(전원 공격 전원수비)와 비슷한 ‘벌떼 하키’를 펼친다. 백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8장짜리 파워포인트 자료를 나눠줬다. 모든 존(디펜스 존-뉴트럴 존-어택킹 존)에서 필드 플레이어 5명 전원이 플레이에 가담하는 5-5-5 전략(Need to play 5-5-5)이 담겨있다.

백 감독 전략의 핵심은 ▶퍽을 지켜라(puck support, puck pressure) ▶골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playoff goals)는 것이다. 공격시 퍽을 소유하고, 수비시 퍽을 강력하게 압박하라는 의미다. 또 상대 문전에선 골사냥을 위해 육탄전도 불사하라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에는 마이크 테스트위드(29) 등 우수인재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으로 변신한 외국인 출신 선수 6명이 뛰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조민호(3골·안양 한라) 등 토종 선수들이 총 11골 중 6골을 책임졌다. 백 감독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의 ‘자긍심’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땀냄새가 나고 지저분했던 대표팀 라커룸은 요즘엔 유니폼이 각이 잡혀 정리되어있다. 선수들은 이동을 할 때 정장을 착용한다.

과거엔 대표선수 선발 때 마다 출신학교 안배 문제가 불거졌지만 백 감독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았다.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요?” 선수들이 물으면 백 감독은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Be positive(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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