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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모처다녀오자 수사급진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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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충격걱인 사망사건은 중앙일보 특종보도(15일자 사회면)로 발생 24시간만에 세상에 알려지고 AP·UPI·로이터등 세계적인 통신이 잇달아 중앙일보를 인용,보도하자 보안에 급급했던 치안본부는 온통 벌집을 쑤신 분위기.
결국 15일 하오6시가 지나서야 치안당국은 『박군이 냉수를 여러컵 마시고 신문시작 30분만에 수사관이 책상을 치며 큰소리로 묻자 갑자기 「억」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고 사건개요를 공개하면서 『고문등 가혹행위는 일체 없었다』고 끝까지 경찰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된후 치안본부가 밝힌 사건경위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부분이 많아 검찰주변에서는 부검실시후 16일에 이미 「경찰이 사건을 변질시키려 하는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
경찰은 『14일상오8시 박군을 하숙집 앞에서 연행했고 조사시작 30분만에 갑자기 숨졌다』며 가혹행위를 할 시간이 없었음을 강조했으나 하숙집 주인의 증언으로는 박군은 13일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수사관이 책상을 치며 추궁하자 갑자기 『억』소리와 함께 의자에서 쓰러겼다는 것도 납득이 어렵다고 검찰관계자들은 조심스런 지적.
박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던중 숨졌다고 경찰은 밝혔으나 왕진의사의 진술은 조사실 안에서 이미 사망상태였던것으로 드러나는등 경찰발표는 여러가지로 의심만 더했다는 지적.
사망현장을 보존하지도 않고 뒤늦게 부검을 위해 검찰에 보고, 24시간뒤에야 부검하고 다음날 바로 화장한 점등도 문제라고 검찰관계자들은 말하기도.
15일밤에 실시된 박군의 사체부검은 사건확대의 결정적 계기.
경찰의 설명과 입회가족·의사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사건은 경찰이 의도하는 수습방향과는 반대로 번져갔다.
특히 박군의 사망당시 상황을 목격한 유일한 외부인인 중앙대부속 용산병원 내과의 오연상씨(32)의 검안서는 경찰의 가혹행위 심증을 짙게한 중대단서(?)였다는평가.
그러나 경찰은 부검이 끝난 16일은 물론 17일상오까지도 계속 결백을 강조하며 16일 박군의 삼촌 박월길씨(37)가 『박군의 몸 여러곳에 피멍이 있었다』는 등 주장을 한다는 보도가 나왔을땐 『박씨를 잡아넣어야겠다』고 엄포까지 놓는 강경(?)자세.
사건발생후 검찰수사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던 인상. 2명의 검사로 팀을 구성, 방증수사에 나서는등 수사에 착수는 했으면서도 검찰은 취재진의 질문에는 함구로 일관하는가 하면 관련경찰관 소환도 미루기만 하는 등 눈에 띄게 신중.
17일상오에야 「진상 철저규명」 공식태도 표명이었는데 그러고도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일요일인 18일까지는 방증수집만 하고 19일부터 검사장이나 차장검사를 수사본부장으로 격상시켜 본격적인 수사를 할방침』이라고 말해 정부의 처리방침이 그때까지도 미정인 인상.
이같은 완만한 수사가 속전속결로 급선회한것은 토요일인 17일 하오 모처에서 관계기관회의를 마친 서동권검찰총장이 하오6시쯤 급히 검찰청사로 돌아와 정해창대검차장·정구영서울지검장·서익원서울지검2차장·이건개3차장등 퇴근했던 간부들을 소집하면서 검찰청의 분위기가 일변.
서울지검의 고위관계자는 회의를 마친뒤 하오7시15분쯤 보도진과 만나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물고문혐의가 드러났다』며 『치안본부가 자체수사하기로 했으며 관련자 2명을 19일 구속할 것』이라고 충격적인 발표.
그러나 이보다 조금 앞선 시간 치안본부에서는 김종호내무장관이 치안본부청사장관실로 와 강민창본부장·박처원5차장등 간부들을 불러들여 정부의 사건수습방침에 따른 사후책을 논의.
잠시후 공보관계자를 통해 『하오6시30분 치안본부장이 모종발표를 하겠다』고 출입기자들에게 통고했으며 기자실에 내려온 강본부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경찰의 대국민신뢰와 명예를 위해 경찰이 이번 사건을 자체조사, 국민들의 의혹이 일체 없도록 19일 사실대로 공표하겠다』고 짤막하게 말하고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상이다. 더 말할것이 없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사건후에도 정상근무를 해온 조한경·강진규 두 수사관은 17일하오 늦게 남영동사무실에서 신길동 특수수사2대사무실로 신병이 옮겨겼다.
철야로 진행된 조사에서 두사람은 18일상오2시쯤 가혹행위사실을 털어놓았고, 18일낮까지 관련수사가 끝나 이강년수사부장등 수사팀이 하오4시쯤 치안본부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후 검찰에서 파견된 검사들과 함께 발표문안과 영장신청서등 작성에착수.
서울지검의 신창언형사2부장과 안상수·이승구검사등 검찰지휘팀은 이날 상오 정상출근해박군을 병원으로옮긴 119구급대운전사 오모씨등 주변관계자조사를 끝낸뒤 하오4시30분쯤 치안본부로 갔다.
사건이 터진뒤 치안본부는 상하가 넋을 놓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
강본부장이하 간부들은 15일 꼬박 사무실에서 밤을 새운데 이어 16, 17일도 자정 넘어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수시로 구수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하는등 노심초사. 일요일인 18일 거의 대부분 간부들이 정상출근, 한결같이 무겁고 착잡한 표정으로 이방저방을 건너다니며 앞으로의 상황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들. 간부들은 『부천서사건의 상처가 겨우 아물고 올 연초가 6년래 가장 조용히 넘어가는등 출발이 좋았는데 큰 불똥을 떠안았다』고 침통일색.
사건후 하루2∼3차례 종합청사와 치안본부청사를 왕래해온 김종호장관은 휴일인 18일 상오10시20분쯤 치안본부로 등청, 1시간쯤 머무르다 하오6시쯤 다시 치안본부청사에 들러 수사상황보고를 듣고 사후책을 지시한뒤 하오 8시30분쯤 퇴청.
17일의 관계기관회의에서는 고문당사자외에 상급자들에 대한 불구속입건방안까지 검토됐으나 경찰의 사기문제를 감안, 담당경찰관 구속·책임자최소인책선에서 사태를 수습키로 했다는 후문.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기억이 생생한 검찰관계자들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올시국에 이 사건이 불길에 휘발유를 뿌린 것 같다』며 상황전개를 우려. 관계자들은『최근 수배자검거를 위해 경찰이 내건 특진·현상금을 놓고 벌어진 과열경쟁이 사건의 원인이라면 큰일』이라며 「부천서사건」이 인천사태수배자 소재추궁에서 비롯됐던 것과 이번 사건이 비슷한 발단임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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