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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대통령, 재단 모금 직접 지시 땐 직권남용 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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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순실(60)씨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안종범(57) 전 정책조정수석 등 핵심 관련자들이 “박 대통령이 개입·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 직무관련성은 넓게 해석돼
최씨가 이득 챙긴 사실 알아도 적용
퇴임 후 대비했다면 제3자 뇌물죄
대통령 임기 중엔 형사소추 면제
최씨, 대통령 담화 보고 목놓아 울어

일단 박 대통령에게 적용될 수 있는 첫 번째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직권남용)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이 혐의로 각각 3일과 6일에 구속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기업 등에 774억원 상당의 출연금을 내도록 공모하고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관건은 박 대통령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재단의 불순한 의도를 알았는지 등이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4일)에서 “(재단 설립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해 추진된 일”이라며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참담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최씨의 범행을 몰랐고, 재단과 관련해 한 일은 정책 차원이었다는 뜻이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이 담화를 검찰 조사실에서 지켜보던 최순실씨가 목놓아 울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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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안 전 수석이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를 받았으며 이를 수시로 보고했다”고 진술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이 7개 기업 총수와 만나 재단 모금을 요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접 지시한 정황이나 최씨의 이권 개입을 알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현직 대통령이라도 충분히 직권남용에 해당될 수 있다”며 “특히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직무관련성을 넓게 해석하는 것이 통례”라고 말했다.

두 재단이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한 ‘자금 창고’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 기업이 낸 출연금은 ‘뇌물’ 성격이 짙어진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를 적용받을 수 있다. 검찰은 “기업들이 대가를 바라고 돈을 건넸다는 정황이 있어야 뇌물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을 두고 “대통령은 구체적 청탁이 없어도 직무관련성이 입증되면 포괄적 뇌물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례를 내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대통령의 경우에도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가 청와대 비서관과 함께 비밀 의상실에서 박 대통령의 옷을 만든 영상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의상실 운영에 들어간 돈이 최씨의 것이라면 뇌물수수, 청와대 자금이라면 공금유용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 대통령의 주요 혐의 중 또 다른 줄기는 기밀문서 유출 부분이다. 검찰이 유출된 문건이 최종 완성된 문서로 결론 낼 경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중간본으로 확인되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될 것이란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서 중간본이 넘어갔다 하더라도 최씨는 대통령기록물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청와대가 최종본을 준 것으로 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어떤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지와 관련해 참고인 조사가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가 면제되는 특권이 있어 ‘피의자’가 될 수 있냐를 두고 법적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조사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선미·서준석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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