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 만들기 위해 농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니?!”?
어릴 적 밥풀을 남기면 으레 어머니의 이 같은 말씀이 따라붙었다. 농사짓기의 어려움과 보릿고개 시절 배곯던 이야기는 덤이었다.
‘볍씨를 뿌려 거둘 때까지 농부의 손을 여든여덟 번 거쳐야 쌀 한 톨이 생산된다’는 말도 있듯 농사란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마트에서 쌀을 사다 먹는 대다수 사람에게 농사의 어려움이란 잘 와 닿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올 봄부터 텅 빈 논에 물이 담기고 심긴 모가 쑥쑥 자라 마침내 이삭이 되어 고개를 숙이는 추수의 계절까지 죽 지켜보고 있자니, 방관자의 입장임에도 괜스레 감격스럽다. 벼농사는 대단히 멋진 것이구나!
그래서 오늘은 추수를 하는 논의 풍경을 담아 보았다. 세계화에 따른 식량의 무기화로 농업이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알리려는 투철한 의식을 담아 그린 건 애석하게도 아니다. 그저 기계화된 추수 방식으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가는 논을 보는 것이 신기했고, 무엇보다 트랙터 그리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제 잘려나간 벼만 남은 황량한 논을 곧 눈송이가 소복하게 덮어 보듬어 줄 것이다. 그렇게 논과 농부는 한 계절을 쉬고 또 내년의 풍년을 꿈꾸어 나가는 것이리라. 오늘 먹던 저녁밥 한 그릇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내게도 어느 정도 수확이 있던 셈이다. 밥풀을 남기는 아이들에게 나도 한마디 던진다.
“쌀 한 톨 만들기 위해 트랙터가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니?”
언젠가 인간의 손 하나 닿지 않은 쌀이 밥상 위에 오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에는 공장에서 쌀을 찍어 내지 않을까. 두레나 품앗이를 통해 합심하여 모를 심고 추수를 하던 어린 시절 풍경들, 광주리 한 아름 새참을 가져오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오래전 세상을 떠나신 그분들에 대한 기억처럼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이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