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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돈 써 서울가도 죽는다" 협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홍콩=박병석 특파원】북한의 납치기도로부터 극적으로 탈출한 윤태식씨(28)는 8일 『나는 한국대사관의 보호를 받고 잘 있으나 나때문에 아내(금옥분)가 어떤 고역을 치르고 있을까 생각하니 고통스럽다』고 말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윤씨는 이날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대사관의 직원이 『윤선생은 이미 우리 조국(북한대사관을 지칭)에 왔으니 도망치면 죽는다. 이미 우리 돈을 썼으니 탈출할 생각은 말라』고 협박했다고 말하고 『이같은 협박에 한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으나 「죽어도 서울가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탈출을 결심했다』고 털어 놓았다. 윤씨는 방콕에서 1박한후 9일 귀국한다.
다음은 윤씨와의 일문일답내용이다.
-한때 마음이 흔들렸다는말은 어떤 뜻인가.
▲북한대사관직원이 『당신은이미 우리돈을 썼고 우리 조국에 왔으니 서울에 가도 죽는다』고 협박했다. 이말을 듣고 두려운생각에 어떻게 할까 순간적으로 겁이났다는 말이다.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기분은 언제부터….
▲하도 수상쩍은 일이 많은데다 공항으로 달려갔을때엔 어떤 범죄조직에 미행당하는 기분이었다.
북한대사관이란걸 알고 부터는 모든 행동을 감시받고 있는것 같은 생각이었다.
-북한대사관 건물에 들어섰을때 기분은.
▲어떻게 된것인가해 다리가 후들거리고 내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려 순종하는척 하다 기회를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난5일 북한대사관에 있을때 어떤 말을 들었는가.
▲자신을 대리대사라고 소개한 1등서기관 이창용으로부터 유고슬라비아를 경유해 스위스로 가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적 망명을 요구할것을 지시받았다.
이는 기자회견에서 과거 유성환의원과 문익환목사에 정치자금을 댄 것이 문제가 돼 한국에서의 영화사업이 망했으며 이때문에 홍콩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한국당국으로부터 부당한 신변위협을 받았다는 망명이유를 내세우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 내이름도 「현정길」로 바꾸고 외출시에는 안경을 끼고 다닐 것과 수염을 길러 늘 일본인행세를 할 것등을 요구했다. 이는 한국에서 요즘 벌이고 있는 평화의 댐 건설성금모금에 대해서도 『돈없는 정부의 인민착취』라고 비방했고 신상옥·최은희씨 부부가 그네들로부터 탈출한뒤 『남조선에 잡혀가 총살당했다』고 억지주장을 늘어 놓았다.
-탈출결심은 언제 했는가.
▲북한대사관에 내가 유인된 사실을 알고부터 줄곧기회를 노렸다. 섣불리 했다가는 일을 망칠것같아 그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체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탈출 경위는.
▲5일하오 그들이 유고슬라비아 경유 스위스행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경계를 늦춘사이에 묵고 있던 칵피트호텔을 몰래 빠져나와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한국대사관으로 내달렸다. 그때 운전사가 『남이냐 북이냐』고 묻는등 실정을 아는듯해 여권을 내보이며 『남이다. 빨리가자』고 재촉했다. 결국 그들은 나를 유고슬라비아를 경유해서 스위스로 보내려고 계획, 이에 맞는 티켓을 구하는게 쉽지않았던 것이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부인 김옥분씨는 지금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내처가 『지상낙원평양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처의 소재가 어째서 일본·싱가포르·평양 등 종잡을 수 없느냐고 묻자『그점은 미안하게 됐다』고 얼버무렸다.
-돈은 얼마나 썼는가.
▲여기서 알고보니 4백만엔이라 한다. 그들이 그랬다.
-지금 심정은.
▲내 아내도 저들의 꾐에빠져 이런일이 생긴것같다. 그가 당할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멘다.
그는 짙은 감색의 양복상의와 회색계통 바지차림으로 한국산 기성복의 상표를 걷어내보이며 『그사람들이 이게 국산이라니까 믿지않다가 상표를 보고는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더라』고 악몽의 순간들을 애써 더듬어가며 들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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