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을 가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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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절박하게 맞닥뜨리는 고민은 어느대학, 어느 학과를 선택하느냐 하는 진로문제일게다. 특히 금년은 전반적인 대입학력고사성적이 예년에 비해 높아진데다 내년부터는 「선지원-후시험」으로 입시제도가 바뀜에 따라「눈치작전」은 어느때보다 치열할 것같다.
입시에 관한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고 나름대로의 전문가들이 이런 저런 방향제시는 하고 있지만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자신의 일생을 그르칠 수도 있는 함정이 있으니 당사자들의 고민은 클수 밖에 없다.
해마다 하는 말이지만 진로 선택에서 그래도 가장 믿음직한 상담상대는 학교의 담임선생이다. 입시정보 전반에 밝고 수험생 개개인의 적성이나 소질도 비교적 소상하게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에도 소위「명문」,「일류대」에 원서를 내라는 고교측의 성화와 안전 지원을 희망하는 학부모사이의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교사들로서야 자신의 제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일류」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스승으로서 보람이며 자랑 일수 있다.
더우기 거기에 따른 성가와 함께 보너스에 위로여행까지 할수있다면 상당한 유혹을 느낄만하다.
물론 대학에서의 전공과목이 한사람의 장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진로설정에 있어 전공선택이 갖는 의미가 과소평가 될수는 없다. 우수한 학생일수록 더욱 그렇다.
가령 예술에 남다른 소질을 가진 학생이 고사성적이 우수해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건 마음대로 지망할수 있게 되었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법과를 지망했다구 치자.
그가 이 분야에서 성공을 했다면 모르지만 뒤늦게 적성이 아님을 알게 되어 낙오라도 한다면 개인적인 불행은 말할것 없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된다.
적성과 관계없는 학과에 들어간 학생들이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못해 재수 궁리나 하고 심한 경우 정신질환증세까지 보인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알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에서만 작년 신입생의 83·4%가 합격후 전과를 희망했다는 사실은 그릇된 진로지도와『우선 붙고보자』는 막판심리가 오랜 시일에 걸쳐 얼마나 심각한 갈등의 요인이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면 네 활개를 치면서 공부를 했을 학생들을 자기네 학교를 「명문고교」로, 스스로를 「일류교사」로 돋보이게 하려고 그르치게 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고교의 진학지도는 하위권 학생에게 더 절박 하다. 이 경우 교사의 한마디 조언은 천만금의 값어치를 할 수 있다. 그 중요성은 상위권으로 갈수록 엷어지는데도 제 갈길을 찾을수 있는 상위권 학생들의 진로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학교보다 학과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입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다. 게다가 학문의 분야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앞으로 어느 학문이 각광을 받을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시대는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자신의 경박한 자존심 때문에, 고교의 명문교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이 소외된 대학진학을 해서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방황을 할것인지 곰곰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학교육이 입신출세와 무관할수 없는게 현실이긴 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학문연찬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여는데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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