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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연휴TV 다큐멘터리가 돋보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시청자들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는 외화와 쇼」라는 방송사의 고질적인 통념이 새해 연휴처럼 잘 증명되는 때도 없을 것이다.
올해 신년연휴TV 역시 1월1일이 마치 미국의 국경일인듯한 착각을 일으킬정도로 「외화와 쇼의 홍수」로 범람했다.
이같이 들뜬 TV속에서 KBS제1TV가 1일밤 방영한 『코리아팬터지-백두대간』과 MBC-TV가 4일밤 방영한 『한강의 사계』등 2편의 장기기획 자연다큐멘터리를 감상할수 있었던 것은 거의 행운에 가까왔다.
『백두대간』(연출 전용길)은 우선 종래의 다큐멘터리들이 손대지 못했던 서사적 테마를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 국토의 맥을 짚어나가면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등뼈를 종주한 『백두대간』은 해남 토말마을을 출발, 지리·덕유·속리·소백·태백·오대·설악등 조산 백두정기를 이어받은 영산들을 순례, 인간이 만든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닌「신성한 자연」을 통해 차원높은 국토애를 전달해준 수작.
『백두대간』이 이같은 평가를 가능케한 것은 첫째 자연을 다루되 그 속에서 숨는 인간의 모습을 자연의 일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수몰지구의 쓸쓸한 농민들과 천진난만한 소년들,벽에 구멍을 파 관솔불을 지피는 「코클」이 소개된 태백산 대이리마을 이종옥씨 식구들, 댓재 산판사람들, 「눈이 올라나 비가올라나 」로 시작되는 백복령 산아낙들의 구성진 『정선아리랑』, 예맥족의 후예처럼 원시적 생명력을 보여준 멧돼지 사냥꾼, 오대산 아계동의 전통혼레식, 영계리 숯가마, 설피마을의 통옥수수죽과 메밀 국수, 간성어촌실향민들의 눈물로 이어지는 이땅의 사람들 . 이들에게서 보여진 찌든 가난과 한들이, 그러나 무한한 신성함으로 다가온 것은 「인간이 곧 숨쉬는 사연」이라는 연출자의 겸손한 생명관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둘째로는 TV사상 첫 시도된 미속촬영. 3∼4시간분량의 영상을 특수카메라로 몇분동안 압축, 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를 벗겨낸 미속촬영은 『백두대간』의 압권이었다. 특히 지리·태백·설악에서 촬영한 구름들은 공중 한가운데서 갑자기 폭발하고, 화염처럼 우글거리며 산등성이를 핥아 올라가고, 파도처럼 구릉을 때린후 범람하는등 자연의 위대하고 오묘한 경관을 뿜어냈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아무래도 「메시지」보다는 「느낌」의 다큐멘터리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그것은 이 작품이「영산의 정기를 통한 국토의 의미」를 가시적인 메시지로 형상화하기에는 관념을 한군데로 끌어모으는힘이 산만했고, 비교적 현실적인 주제였던 「통일에의열망」 역시 「대자연의 순수」에 압도당했기 때문인것 같다.
한편 MBC-TV의『한강의 사계』(연출 박흥영) 역시1년여에 걸친 꼼곰한 촬영을 통해 한강의 생태계를 섬세히 포착,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생생하게 그려댄 수작이었다.
특히 곤충→개구리→뱀→맹금등으로 이어지는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인 먹이사슬, 끈끈이 주걱, 한국땅거미, 살모사의 출산, 멧돼지의 서식,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물수리, 잠자리의 우화장면등을 완벽하게 재현, 진귀한 영상자료로서의 교육적 효과까지 얻어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생명의 소우주」인 한강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가시화한데서 만족하지 않고 인간과의 관계까지 의미망을 넓히려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영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메시지를 군데군데 삽입함으로써 오히려 「자연보호캠페인」등과 같은 의미축소현상을 낳아버린 점이 아쉬웠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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