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체임 엄히 다스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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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연말에는 예년에 비해 근로자들의 마음이 한층 풍요로운 것 같다. 유례 드문 호경기로 많은 기업들이 전례 없이 두툼한 보너스를 준다는 소식이다.
한해를 결산하여 경영성과에 따라 근로자들에게 성과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은 우선 기쁜 일이다.
이같은 성과배분의 정도가 한햇동안 땀흘린 근로의 댓가에 상응할 이만큼 충분한 것 인지의 문제는 우선 접어 두고라도 기업에 따라서는 특별 또는 추가 명목의 보너스를 주는 회사가 많다. 보너스는 경영실적의 균점이라는 의미도 되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대우가 아직 미흡한 우리의 임금수준에서 볼 때 정액급여의 보전적 의미를 갖는다. 어쨌든 보너스는 근로자들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보너스 이야기로 오히려 풀이 죽는 근로자들이 아직도 많다.
남들이 정액임금은 물론 각종 보너스까지 합쳐 두툼한 봉투에 희색이 만면할 때 정당히 받아야할 근로의 대가마저 못 받고 체임으로 우울한 연말을 맞는 근로자들이 우리주위에 많은 것이다. 체임문제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나 개선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임금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근로자들의 최저 생계대책이다.
그런데 올해에도 전국임금체불 현황은 1백16개 업체에 40억원에 이르며 근로자 1만4천여명이 임금을 못 받고 있다. 이 체임근로자들에게는 『올해 같은 경기는 몇년만 이다』, 『우리경제는 올해 12%나 성장했다』는 등 이야기가 실감나기는커녕 오히려 허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임의 책임은 직접적으로는 업주에게 있으나 노동행정에도 일단이 있다.
정부는 체임단속, 근로감독 등 체임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기는 하나 그래도 체임문제는 고질화되고 있다. 노동행정의 사각지대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계획적으로 떼어먹고 달아나는 기업주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노동부 집계에 의하면 올들어 11월말 현재 임금, 퇴직금을 체불하고 잠적한 사업주가 1천4백76명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악덕기업주는 지난해에도 1천5백여명이나 되었고 83년 7백여명, 84년 1천2백78명에 비해 해마다 느는 추세다. 이같은 기업주는 의당 법의 심판을 받게되는데 검거률이 83년 59%, 84년 51%, 85년 37%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감금채권의 소감시효가 3년이어서 일정기간 도피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악덕기업주 등은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또 올들어 임금상승체불로 구속된 사업주는 불과 12명뿐이고 설사 구속시킨다 해도 체임액의 10%정도의 벌금을 물거나 집행유예 선고가 고작이라고 한다. 체임에 대한 법망이 허술한 것이다.
이 밖에도 체임은 종국적으로 당사자들끼리의 민사소송에 의존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은 판제 받을 수 있는 우선 순위가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근로자들이 얼마 안되는 체불임금을 받아 내기 위해 소송비용과 시간을 들여 매달리기를 기대하기는 당초부터 힘드는 것이다.
이처럼 현행법의 테두리로는 상습체임을 일소할 수 없다는데 정부는 유의해야할 것이다.
체임은 사전예방도 중요하지만 사후에도 근로자 편에 보다 유익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야 한다.
체임을 아무리 엄하게 다스려도 이를 나무랄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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