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빨리 수습하라” 원로들 쓴소리 2시간 뒤 청와대 물갈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기사 이미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8일 오후 대사 신임장 수여를 위해 청와대 인왕실로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보수·진보를 포괄한 각계 원로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쓴소리를 들었다. 2시간 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부속·이재만 총무·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추천 기사

지난 29일에는 새누리당 원로인 상임고문단 8명을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이틀간 원로들이 건의한 시국수습책은 ‘청와대 인적 쇄신→대통령 본인을 포함한 철저한 검찰 수사, 필요시 중립적인 특검 수용→거국(擧國)중립내각’ 등이었다. 이 가운데 일단 첫 번째 요구를 실행에 옮겼다.

이틀간 보수·진보 원로 만난 박 대통령
이세중 “중립내각 땐 정치인 배제”
“검찰 수사 전적 협조해야” 의견도
일부 “직언하는 사람 왜 곁에 없나”
박 대통령 “죄송, 최선 다하겠다”
필요한 대목서 꼼꼼히 받아 적어

30일 박 대통령과 만난 원로들은 조순 전 서울시장,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 이홍구 전 총리, 이세중 환경재단 이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고건 전 국무총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심 대한노인회장, 진념 전 부총리, 박세환 전 재향군인회장(나이 순) 등이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시간여 회동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다들 연로하신 분들인데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하다”며 사과부터 했다.

이후 원로들이 의견을 내자 직접 받아 적었다고 한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고건 전 총리는 “이런 문제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사과도 빨리 해야 하고 수습도 빨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재야 시민단체 출신인 이세중 이사장도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했던 국정운영 틀과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며 “그것이 국민들에게 박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중립적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면 정치권 인사들은 배제하는 게 좋겠다”고도 조언했다.

원로들은 엄정한 검찰 수사도 강조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검찰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이해하지 않겠느냐”며 우회적으로 청와대가 전날까지 압수수색에 비협조한 부분을 거론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전체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답했다고 참석자들이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대통령이 이왕 개헌 이야기를 꺼냈으니 여야가 협조해 개헌에도 진전이 있었으며 좋겠다”고 했다.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청와대 회동에서 ‘대통령도 사람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소통에서 좀 편한 쪽을 취해 오다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겼는데, 국민에게 솔직하게 다 고백하는 게 좋다. 다 털고 이제는 소통하는 대통령으로서 새로 태어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박 대통령이 상당히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박 대통령은 전날에도 김수한·박관용·박희태·강창희 전 국회의장, 신영균·김용갑·이세기·김기춘 전 의원(나이 순) 등과 90분간 회동했다. 새누리당 고문들은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개편을 빨리 하라”고 조언했다. 대통령 자신이 수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세기 전 의원은 “최순실씨를 빨리 불러들이고 필요하면 대통령 스스로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 표명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박 대통령의 표정이 어둡고 힘이 없었지만 필요한 대목에선 빼놓지 않고 메모를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왜 지금까지 직언하는 사람을 곁에 두지 못했느냐”는 쓴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죄송하다. 고견을 들었으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효식·이충형 기자 jjpo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