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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매출액 증가율이 15%에서 0.3%로…한국기업 성장지체 언제까지?

중앙일보

입력

 
한국 기업의 성장세가 쪼그라드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년이었다. 2010년 연 15%를 넘던 한국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지난해 0.3%로 급전 직하했다. 올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기업의 외형은 경제성장과 고용·소득·소비 등의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요소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기업경영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7만여 개 비금융 영리법인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0.3%로 전년(1.3%)보다 더 하락했다. 매출액 증가율은 2010년만 해도 15.3%였으나 2011년 12.2%, 2012년 5.1%, 2013년 2.1% 등 해마다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대목은 매출액 증가율 하락을 주도하는 게 한국 경제성장 핵심 동력이었던 대기업과 제조업이라는 점이다. 대기업 매출액 증가율은 2014년 -0.4%에서 지난해 -4.7%로 크게 떨어졌다. 대기업은 2010년에만 해도 매출액 증가율이 16.4%로, 전체 기업 매출액 증가율을 앞지르며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한번 추락하기 시작하자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2012년 5.0%로 전체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을 하회하기 시작한 대기업은 2013년(-0.3%)부터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제조업도 2014년 -1.6%, 지난해 -3%로 2년 연속 매출액이 뒷걸음질쳤다. 2010년 18.5%의 매출액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모습은 빠르게 잊혀졌다.

올해라고 해서 추세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30일 CEO스코어가 올해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시가총액 상위 50대 기업의 실적을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본 결과 이들 기업의 매출액은 평균 6.3% 감소했다.

포스코·SK이노베이션·현대중공업·하나금융지주·에쓰오일·현대글로비스·한미사이언스·현대건설·OCI·GS건설·현대미포조선 등 11개 비금융 영리기업은 영업이익 증가에도 매출액이 감소했다.

재벌닷컴이 올 1~3분기 실적을 발표한 매출 상위 30대 기업(금융회사 제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역시 다르지 않다. 포스코·LG전자·SK이노베이션·에쓰오일·LG디스플레이·SK하이닉스·LG이노텍·현대중공업·LG화학·현대건설·포스코대우·SK텔레콤·LG상사·효성·현대위아 등 전체 절반인 15개 기업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3분기 실적·경영전망 조사 결과에서도 275개 응답기업 중 62.2%가 지난해와 같거나 악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들의 덩치가 좀처럼 커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전경련 설문조사에서는 ‘소비부진에 따른 내수 위축’(42.6%)과 ‘글로벌 경기 위축에 따른 수출 부진’(35.1%)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을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 전문가들도 중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소비시장의 장기 침체 때문에 수출이 부진해진 것을 중요 요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문제점을 기업 내부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한국 기업들의 ‘빠른 추격자’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해외 선진기업들이 먼저 뚫은 길을 빠르게 따라오면서 덩치를 키워왔지만 이제는 그들을 다 따라잡은 상황”이라며 “새롭게 나아갈 길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낯선 상황에 봉착하면서 성장 지체 현상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기업의 성장은 투자에서 시작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맨 채 투자를 꺼리고 있다”며 “정부가 지속적인 규제개혁 등을 통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덩치를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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