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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잔혹함 줄이고 긴장감 더했더니 공포영화,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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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가 비인기 장르라고? 최근 한국 극장가를 들여다보자면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이야기다. 2013년 제임스 완 감독의 공포영화 ‘컨저링’이 관객 226만 명을 모은 것을 시작으로, 최근 ‘라이트 아웃’(데이비드 F 샌드버그 감독)과 ‘맨 인 더 다크’(페드 알바레즈 감독)까지 100만 명 내외의 흥행을 기록했다. 이처럼 할리우드 웰메이드 공포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이런 공포영화가 관객에게 꾸준한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한국영화에 어떤 자극이 될 수 있을까 짚어 봤다.

‘컨저링’부터 ‘맨 인 더 다크’까지, 할리우드 호러의 인기 비결

“‘공포영화는 보는 사람만 본다’는 선입견을 깨는 게 중요했다. 포스터에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문구를 넣은 이유다. 잔인한 장면들이 이어지는 슬래셔영화와 달리, 일상적인 소재로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컨저링’ 수입·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이하 워너코리아) 심영신 마케팅 상무의 말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완 감독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을 극한의 공포로 증폭시킨 ‘쏘우’(2004) 등의 공포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컨저링’에서는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한층 절제된 공포를 빚어냈다. 일상적인 집 안 풍경에 누군가의 박수 소리를 흘리는 식의 연출로, 자극적 장면 없이 관객을 한껏 긴장하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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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더 다크

‘컨저링’이 2013년 추석 연휴에 개봉해 관객 226만 명을 모은 것은, 국내 극장가에 할리우드 웰메이드 공포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당초 워너코리아가 ‘컨저링’의 국내 개봉 여부를 고민했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워낙 비인기 장르로 여겨진 탓이다. ‘컨저링’의 흥행은 2014년 ‘컨저링’의 프리퀄이자 스핀오프작인 ‘애나벨’(존 R 레오나티 감독), 지난해 ‘인시디어스3’(리 워넬 감독) 그리고 올해 개봉한 ‘라이트 아웃’ ‘맨 인 더 다크’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모두 관객 수 100만 명 내외의 흥행을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맨 인 더 다크’를 제외한 모든 작품의 제작에 제임스 완 감독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의 홍보 과정에서 완 감독의 이름이 적극적으로 노출됐음은 물론이다. 그가 다시 연출을 맡은 ‘컨저링2’는 올해 극장가에서 관객 192만 명을 모았다. 워너코리아 심영신 상무도 “‘컨저링’을 통해 완 감독이 국내 관객에게 확실히 ‘믿고 보는 공포영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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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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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아웃

‘컨저링’을 포함,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잔혹한 볼거리로 관객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곧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쌓아 가며 관객을 가슴 졸이게 만드는 점이 특징이다. 악령 들린 인형을 소재로 한 ‘애나벨’,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인시디어스3’, 귀신 들린 또 다른 집을 그린 ‘컨저링2’, 불을 끄면 나타나는 존재를 내세운 ‘라이트 아웃’, 눈은 멀었지만 무시무시한 전투력의 노인을 통해 공포를 자아내는 ‘맨 인 더 다크’까지 모두 그렇다. “공포영화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한때 ‘링’(1998, 나카타 히데오 감독) ‘주온’(2002, 시미즈 다카시 감독) 등 소름 끼치는 모습의 귀신을 내세운 일본 공포영화가 유행했지만, 지금은 시각적 볼거리보다 심리적 공포를 일으키는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인시디어스3’와 ‘맨 인 더 다크’를 수입·배급한 UPI코리아 마케팅팀 박주예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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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은 흥행에 있어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먼저 미국 극장가에서 저예산 공포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첫 주 흥행 1~3위에 올랐고, 이 소식이 국내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국내 극장가에서는 대개 첫 주 흥행 순위 2~3위로 출발해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다. 다른 외국영화와 비교할 때, 10~20대 관객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도 특징이다. 할리우드 수퍼 히어로 영화인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4월 27일 개봉, 앤서니 루소·조 루소 감독)의 전체 관객 중 10~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9.7%인 데 반해(10대 이하 3.3%, 20대 36.4%, 30대 29.2%, 40대 25.5%, 50대 4.8%, 60대 이상 0.8%), 위에서 언급한 할리우드 공포영화들은 10~20대 관객 비중이 전체의 63.2~72.3%에 달한다. 워너코리아 심영신 상무도 그 점을 주목한다. “10~20대 젊은 관객이 놀이 기구 타듯, 영화관에서 함께 소리 지르며 영화를 즐기는 관람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보다 놀라, 먹던 팝콘을 자리에 쏟았다’는 뜻의 ‘팝콘 샤워’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 말이 누리꾼 사이에서 ‘그 작품이 얼마나 쫄깃한 공포영화인지’를 나타내는 척도로 쓰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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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공포영화 시장이 새롭게 형성된 배경은 무엇일까.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제임스 완 감독 같은 공포영화 전문 제작진이 오늘날 관객의 입맛에 맞춰 장르의 관습을 변형한 결과”라고 본다. 그는 “반면 한국영화에는 공포영화를 제작할 전문 인력이 빈약한 데다, 장르의 관습을 새롭게 변형하는 노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순수 공포’를 표방한 한국영화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거니와, ‘소녀괴담’(오인천 감독) ‘맨홀’(신재영 감독)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2012~) 같은 한국 공포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그 대신 ‘부산행’(연상호 감독) ‘곡성(哭聲)’(나홍진 감독) ‘검은 사제들’(장재현 감독) 같은 기대작들이 일종의 복합 장르로, 극적 긴장을 자아내는 데 공포 장르를 적극 활용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홍보에 있어서는 공포 장르를 내세우지 않는다. 공포가 워낙 비인기 장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곡성(哭聲)’의 제작·배급을 맡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김성경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새로운 흐름이 국내 영화인에게 좋은 영감을 줄 것 같다. ‘관객이 공포영화의 새로움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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