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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몇 초를 남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또다시 저무는 한해.
인간들의 영원한 탐욕 때문에 지구도 피곤하고, 내가 소속해 있는 한반도의 반목도 피곤하고, 내가 살고있는 서울도, 부산도, 또 그 밖의 다른 곳도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던 한해의 마지막 몇 초를 붙들고 그 피곤했던 시간들이 역시 위대했음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겉으로 보기엔 단지 파멸처럼, 패배처럼 보였던 그 피곤한 시간들의 무한한 역사적 깊이에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싶다.
맛있는 음식과 빈약한 음식, 비싼 옷과 싸구려 옷, 좋은 언어와 벌거벗은 언어의 투쟁이 없는 사회 속에서도 진실과 생명을 동일한 가치로 확인할 수 있다는 꿈은 우리들의 피곤한 시간 속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세련된 순화와 기교와 공허한 상상력이 우리의 깨진꿈을 보상하고 외로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숙명처럼 우리 앞에 버티고 서서 우리로 하여금 갈 길을 재촉하고 있는 희미한 종소리. 온갖 잡음 속에서 끊어질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먼 종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독특한 조건과 성격 때문에 우리는 논쟁과 분열과 대립 속에서 쓸데없이 언어들만 죽이고 있다.
진짜와 가짜가 뒤범벅이 된 소용돌이에 파묻혀 이 마지막 몇 초마저 소비하고 만다면 또다시 새로운 몇 초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보란 폭풍과 같다는 「벤저민」 의 말에 우리가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혼란 속에서 죽여버린 그 수많은 언어들을 파괴의 잔해로 맞이해야 하다. 그 잔해들은 지금 우리 앞에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어 미래를 측정할 수 없고 희망의 확실한 자신감을 의식케 만들고 있다.
허물어지는 현상을 지렛목으로 받치고, 질서에 대해 무한한 신비를 수식하고, 공허한 허위의식을 계속 강조한다고 해서 파괴의 잔해들이 정화되지 않는다.
건강한 역사는 그것을 소화시킬 부패한 의를 갖기를 거부한다. 우리가 두려워 가기 싫다고 발버둥쳐도, 자기만 아늑한 안식처에 숨고 싶어해도 건강한 역사는 거대한 힘으로 폭풍처럼 밀어붙인다.
1백년동안 되풀이된 역사의 반전보다 우리는 성취될 새로운 역사의 단 몇 초가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무도 그 몇 초를 예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알고 싶어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에 맞이하고 싶어 하지만 욕망과 탐욕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만큼 진보의 시간은 과학적이고 반동의 시간은 비과학적이다.
진정 다 써버리고 밑바닥에 간신히 붙어 있는 이 해의 마지막 몇 초를 남겨놓고 너무 많은 말도 하지 말자. 향기도, 실체도 없는 허구의 말을 꺼내 쉽게 그렇소, 아니오 라고 대답하지도 말자. 과거도 정확하게 흘러가고 미래 또한 정확하게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우리 발 밑에 산더미처럼 쌓인 파괴의 쓰레기들을 삽질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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