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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1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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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을 피우는 냄새가 났다. 그러자 다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화의 방이다.
도화가 작은 화로처럼 생긴 용기에 불을 붙인 침향 세 개를 꽂고 나를 돌아봤다.

“당신 정말 아슬아슬했어. 거의 소멸 직전이었다고. 때마침 동자가 외부에서 결계를 깨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그러면서 눈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승합차를 운전했던 중년 남자가 도화에게 고개를 꾸뻑 숙이더니 멋쩍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고맙습니다. 나도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소용없어. 동자는 널 보지 못해. 아직 영안(靈眼)이 안 트였거든. 머리도 나쁘고 아둔해서 수행이 한참 부족해. 아까도 내가 문자를 보내놓은 게 언제인데 늦장을 부려서 최 상사 그 늙은이한테 뒤를 잡힐 뻔했잖아. 그랬으면 그게 무슨 망신이야.”

도화는 그냥 봐도 삼촌뻘인데도 마치 애를 나무라듯이 신랄한 독설을 퍼부었다.
중년 남자는 불쾌하지도 않은지 오히려 죄송하다는 듯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 보였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기란 나로선 불가능할 거 같다.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어.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아.”

도화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나는 도화를 돌아봤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꿈을 꾸었던 걸까. 아니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 걸까. 그 경계가 모호했다.

“망자는 꿈을 꾸지 않아.”

도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꿈이 아니면 뭐지?

“글쎄, 아마도 과거의 기억, 아니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갔었다는 게 맞겠지. 신엄마의 말로는 망자들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은 산사람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어. 아마 시간의 흐름도 잘 느껴지지 않을 거야. 아침인가 하면 점심이 되어있을 테고, 또 점심이겠거니 하면 저녁일 테고 말이야. 그리고 망자들은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습성이 있댔어. 아마도 당신이 겪은 그 현상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은데?”

혼란스럽다.
그럼 나는 처제와 바람을 피웠다는 건가? 아내를 두고?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미치도록 그리워하는데?
도화가 히스테릭한 웃음소리를 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당신,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알고 보면 정말 죽어 마땅한 개새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다시 복습할 시간인 건가. 망자는 말이야.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존재야. 몇 번을 말하니. 지금 당신은 원래의 온전한 ‘당신’이 아니라고. 대부분 부서지고 소멸되고 남은 그 파편, 일부에 불과해.”

파편, 일부…….

“뭐 그렇다고 갑자기 감상적일 것까진 없잖아. 그게 사실이니까. 죽음을 겪고 혼과 백이 붕괴되고 분리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당신’만 이승에 남아버린 거야. 그게 다야. 간단하지? 그러니까 당신 말이야. 내가 계속 말하지만 자신이 이미 죽은 존재라는 거 망각하지 마. 생전의 당신이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자꾸 엉뚱한 데 집착하면 정말로 골치 아픈 잡귀가 될지도 몰라. 알겠어? 그때는 나도 미련 없이 최 상사한테 당신을 떠넘겨버릴 거야. 나는 문제를 끌어안고 싶지는 않으니까.”

문제를 떠안고 싶지 않다, 라고. 나는 이미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거 아닌가? 그 최 상사라는 무시무시한 노인도 계속 나를 노리고 있고. 그래, 아마도 그 노인은 쉽게 포기할 거 같지 않은데 그럼 나는 지금도 너에게는 문젯거리인 셈이지 않나.
도화가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침대 끝에 걸터앉아서 나를 쳐다봤다.

“골칫거리? 아직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요사이 지루했던 참인데 나름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어, 당신. 그리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이긴 한데, 나는 그 늙은이가 예전부터 맘에 들지 않았어. 걸핏하면 신엄마를 들먹이고 꼰대 짓을 하려 든단 말이야.”
동기야 어떻든 도화가 변덕만 부리지만 않는다면 당분간 그 무시무시한 늙은이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좋든 싫든 도화 곁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내가 무엇 때문에 살해당했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처제와의 관계도 그렇고. 나를 찾아왔던 건달들이나 부장과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고 싶어졌다.
참 얄궂다. 내가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니. 이젠 나 스스로 내 자신을 캐봐야 한다. 어떤 인간이었는지, 정말로 도화의 말처럼 인간쓰레기였는지. 진실을 알아야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원통해서…….

“진짜 원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지.”

도화가 잘라 말했다.
원귀가 되어버린다. 참 끔찍한 결말이구나.

“동자야. 너는 이만 가봐. 내일 아침 일찍 의뢰인을 만나야 하니까 늦지 말고 차를 대기시켜 놔. 괜히 드라마 쳐본다고 늦잠 자지 말고. 알았지?”
도화가 빨리 꺼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중년남자는 넉살 좋게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는 충견처럼 도화의 말에 잘 따랐다. 참 놀랍다. 나 같으면 저런 대우를 받고서는 도저히 밑에서 일을 못할 텐데.

“그런 건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면 안 돼.”

도화가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끌어당기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 모양이다.
나는 방에서 나가줘야 하는 것인지 잠시 망설였다.

“하아, 그런 것도 일일이 가르쳐줘야 해? 그럼 안 나가고 방에서 뭐할 거야? 변태처럼 나 자는 거 지켜보게. 보기보다 예민한 여자야. 누가 쳐다보고 있으면 제대로 못 자. 무슨 관음증 환자도 아니고 말이야. 욕먹기 싫으면 방에서 나가줘. 어차피 당신은 망자라서 잠을 잘 것도 아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방을 나가려고 돌아섰다.

“아 그런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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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도화를 쳐다봤다.

“당신, 천도할 생각은 없는 거야?”

도화가 물었다.
천도라는 건, 천당이나 지옥 뭐 그런 데로 가는 건가?

“글쎄, 나도 죽어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망자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 하지만 어딘가로 떠나는 건 맞아. 그게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사이비 과학자들이 신봉하는 영계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천도를 받는 망자들이 무척 행복하고 편안한 안식을 느끼며 떠났다는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도화가 잠시 말을 끊었다. 침묵이 길어지는 걸 보니 뭔가 곤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당신 언제까지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어. 내 말은 내 집을 말하는 게 아니야. 망자는 결국 천도하지 않으면 잡귀가 되기 마련이야. 시간문제라는 거지. 더욱이 당신처럼 집착이 생긴 망자는 더더욱 위험해. 당장은 그 집착을 해소하는 게 먼저겠지. 그래서 그러고 나면? 고민해봐. 내가 특별히 무상으로 천도를 해줄 테니까. 너무 오래 시간을 끌지는 말아줘. 적당한 시기에, 결심이 서면 그때 이야기해.”

도화는 용건을 다 말했다는 듯 빨리 나가라고 손짓했다.
나는 도화의 방에서 나왔다.
한동안 거실을 서성이며 도화가 한 말들을 곱씹었다.
만약에 천도를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완전히 소멸되는 걸까?
아니면 도화의 말처럼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게 되는 걸까. 그럼 그다음은 무엇이 있지?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자, 갑자기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심오하고 난해한 문제다.
다른 고민으로 바꿨다.
나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과거의 기억을 보고 나니까 유력한 용의자들을 꼽을 수 있게 되었다.
차 실장이 일 순위다.
건달이고, 사채업자이니 때에 따라서 사람을 죽인 적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겐 강력한 ‘동기’가 있다.

그래, 동기…….
가만,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나에게 받아야 할 ‘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를 죽여 봐야 득 될 게 없다. 사채업자는 돈이 그 무엇보다 최우선이 아닌가. 그럼 채무자를 죽이면 돈을 받을 방법이 사라지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차 실장은 아니라고 봐야겠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느껴졌던 차 실장이지만 그에겐 나를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 고한덕 부장은 어떨까?
기억이 너무 단편적이라 그와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날 부장과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조금 더 기억이 되살아나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나와 통화할 때 부장의 목소리에서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절박하고 필사적이었다는 거다.
차 실장과 고 부장,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아마 그걸 알게 되면 내 죽음에 대한 의혹도 풀릴 것이다.

그리고 처제.
솔직히 처제와 그런 관계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내 기억이 어디서부터 틀어져버린 걸까.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주 많을 것 같다. 도화의 말처럼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니까.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기억들을 되살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정말로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다면 어떡하지. 나는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맞는 것인지.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 도화가 말하지 않았나. 망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집착이라고. 그 집착을 없애려면 내 과거를 알아야 할 것 같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그 무시무시한 영감을 언제 다시 맞닥뜨릴지 모를 일이다. 두 번째까지는 요행이었다고 쳐도, 다음번에 만났을 때도 운이 따라 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도화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도화가 순순히 나를 도와줄까?
나는 아직도 나를 돕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단지 순수한 의도로 나를 돕는 것 같진 않다. 막연하지만 뭔가 나에게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그녀가 나를 도와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정말로 의문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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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창작그룹 <화담>대표.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출간작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카르마,
우리가 연애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웅진 시작), 한국 환상문학단편선(웅진) 기획 및 작품 수록
영화소설 '열한 시', '또 하나의 약속', '수상한 그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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