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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증권금융은 금융 마피아의 밥그릇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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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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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 기자

“증권금융은 금융 마피아의 일자리 창출 기관이 아니다”

금감원 임원 석연찮은 이동
“인사 적체 해소 차원” 궁색한 변명
전문가 “인사 시스템 개혁 필요”

지난 24일 양현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은행담당)가 한국증권금융 부사장에 선임되자 증권금융 노조가 내놓은 성명이다.

노조가 반발하는 이유는 증권금융의 주요 보직이 모두 외부 인사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지원 사장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고, 올해 7월 취임한 조인근 감사는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출신이다. 특히 조 감사는 금융에는 전문성이 없다. 더구나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 씨의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 보도가 나온 직후 잠적해 연락을 끊은 상태다.

증권금융은 원래 은행(35.5%)·증권회사(34.8%)가 지분을 나눠 소유한 민간회사다. 그런데도 ‘낙하산 천국’이 된 건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의 요청으로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공직유관단체로 지정을 받았기 때문이다.“정부 위탁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위의 논리였다. 공직유관단체는 공직자가 취업심사를 받지 않고 취업할 수 있다. 금융위 출신 사장과 청와대 출신 감사, 금감원 출신 부사장이 별다른 절차 없이 취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실 증권금융 임원에 ‘금피아(금융당국+마피아)’가 낙하산으로 내려간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정지원 사장 이전의 김영과·박재식 사장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출신이고, 조인근 감사 이전의 김희락·김회구 전 감사위원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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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2014년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생긴 ‘관피아(관료+마피아) 방지법’으로 민간회사인 증권금융에 공직자의 취업이 어렵게 됐다. 금융권에서는 취업 족쇄를 풀기 위해 금융위가 꺼내든 카드가 공직유관단체 지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다보니 증권금융 노조는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 공직유관단체 지정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는 증권금융만의 난맥상이 아니다. 한국거래소도 지난해 증권금융과 함께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된 이후 경영진이 금피아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올 7월엔 이은태 부원장보(금융투자 담당)가 부이사장, 이달 들어선 금융권의 친박 실세로 불리던 정찬우 전 금융위 부위원장이 이사장에 취임했다. 두 번 모두 거래소 노조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낙하산 인사는 금융회사에도 피해를 준다. 이번에 증권금융 부사장에 임명된 양현근 부원장보는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관리 등 은행업무 전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임원이다. 당장 시중은행에서는 “아파트 집단대출(중도금·잔금·이주비 대출) 증가속도 관리, 구조조정 대상 기업 선정 같은 현안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청와대나 금융당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금융권 재취업을 무조건 막아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증권금융이 낙하산 인사 투하처가 되면서 방만경영을 한다는 시장의 불만이 크다”(채이배 국민의당 의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금융당국 직원의 내부 업무에 대한 임기 보장과 외부 진출 원칙을 담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언도 새기길 바란다.

이태경 경제부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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