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최악 상황 대비” 이주열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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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최순실 폭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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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담을 인용하며 “최악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화두가 심상치 않다. 이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되 최선의 상황에 대한 희망을 놓지 말라(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

‘최후의 보루’ 부동산도 불안
내년 성장률 2.2% 예측도
1%대 추락 가능성 배제 못해
“정치 바람 타지 않는 리더가
경제 정책 뚝심 있게 밀고 가야”

26일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영국 속담을 인용해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발언에는 희망도 포함됐지만 방점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에 찍혀 있다.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이미 내수와 수출 동반 부진, 더딘 구조조정, 과다한 가계 부채 같은 악재 때문에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 경제에 ‘최순실 폭탄’까지 터졌다. 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전날 발표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자료가 입증하듯 현재 한국 경제는 부동산을 제외하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 사태와 현대차 파업 사태의 여파로 제조업 성장률은 7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1%에 머물렀다. 4분기에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총재도 경제동향간담회에서 “3분기까지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 등에 힘입어 완만한 회복세를 유지했지만 앞으로도 성장 흐름을 이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갤럭시노트7 사태▶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을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최후의 보루인 부동산에서도 불안 징후가 감지된다. 이날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건설경기 둔화 가능성을 경제 불안 요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과거 부동산시장 과열이 대부분 국지적 현상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향후 동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급 과잉 우려도 제기됐다. 권나은 한은 금융결제국 과장 등은 이날 발표한 ‘최근 건설 투자 수준의 적정성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과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국가들의 GDP 대비 건설 투자 비중은 10% 안팎인 데 반해 한국은 15%”라며 “인구 고령화로 주택 수요가 둔화하는 상황이라 점진적으로 건설 투자 증가 폭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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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연구원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이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전망했다. 정부(3.0%)·한은(2.8%)·한국개발연구원(KDI·2.7%) 전망치보다 낮은 수치다. 금융연구원은 “성장의 두 축이었던 민간소비와 건설 투자 성장률이 하락함에 따라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2.7%)보다 낮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금융연구원은 개별소비세 인하를 포함한 내수 활성화 정책이 종료된 데다 김영란법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내년의 민간소비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양 물량 감소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감소로 경제를 떠받쳐 왔던 건설 투자의 성장도 약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금융연구원보다 더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곳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2%로 예측했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전망치보다 낮아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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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순실 사태’까지 터졌다.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하면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심해져 각종 경제정책 및 개혁 작업의 추진이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정치 이슈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확고한 ‘경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경제위기나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 같은 위기 국면일수록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정치와 무관하게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경제부총리는 정치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경제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납작 엎드린 공무원들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도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산업별 방향에 대한 밑그림을 갖고 업계와의 긴밀한 협의하에 경제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석·한애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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