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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지사회 향해 첫걸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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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예산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3저의 호기를 배경으로 오랜 숙원이던 복지사회 실현에 한발을 내 디뎠다는 점이다.
정부재정의 기능은 크게 자원배분의 조정, 소득의 재분배, 그리고 경기조절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
70년대에는 주로 성장을 뒷받침하고 80년대초에는 안정기조 정착에 초점이 맞추어짐으로써 자원배분이나 경기조절기능에 역점이 주어졌고 소득재분배 문제에는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었다.
내년도 예산이 88년 실시예정인 국민연금제·최저임금제·농어촌 의료보험실시 등 3대 복지시책의 실현을 앞두고 그 준비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것은 국제수지 흑자원년의 도래와 함께 80년대 후반 우리경제의 색채와 향방을 특징짓는 커다란 변화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다.
내년도 예산은 국민연금제 등 복지제도의 도입 준비를 의한 예산 7백55억원을 비롯, 영세민 지원대책비 등에 86년보다 44% 1천2백1억원이 늘어난 3천9백31억원을 책정하고 있고 복지예산과 궤도를 같이하는 농어촌 지원에 61·6% 3천3백64억원이 증가한 8천8백69억원을 계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예산을 이처럼 크게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저유가에 대한 기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원래 정부가 87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전제로 삼은 내년도 경상 GNP 성장률은 10·7%, 조세수입 증가율은 11·3% 였다. 그런데도 총규모 12·7%가 늘어난 세출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부족분을 원유도입에 대한 관세 추가 징수분으로 보충한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정부는 내년도 국제 원유가가 배럴 당 15달러 수준에 머무른다는 전제아래 원유가 하락분 에서 7천4백억원의 가용재원을 마련, 그중 2천1백억원을 관세로 흡수하여 직접 재정에 충당하고 나머지재원도 2천2백억원은 석유기금자금 특별회계에 예탁해 재정 융자사업으로, 9백 억원은 댐 건설 등 예산사업 대체자금으로 쓰며 2천2백억원만을 기름값 상승 등에 대비한 조정자금으로 쓴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결국 유가하락에서 생기는7천4백억원 중 70%에 해당하는 5천2백억원을 직접 간접으로 나라살림에 보태 쓴다는 얘기다.
내년 예산에서 농어촌지원에 61·6%, 복지예산에 44%의 파격적인 증액이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기름값 하락이라는 보너스 덕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너스가 내년에 우리의 기대대로 굴러 들어와 줄 것인지도 의문이거니와 그 후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그런데 잘 알려진 대로 사회복지제도라는 것은 일단 시작해 놓으면 해마다 예산수요가 늘면 늘었지 줄어들 수는 없는 팽창성향을 갖고 있다.
3저의 호기와 같은 좋은 여건이 계속되어 지속적인 고도성장이 가능하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한 경우 성급히 도입한 사회복지제도가 오히려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성장둔화·복지의 후퇴라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도 없지 않다.
사회복지의 실현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정치적 요구에 쫓긴 복지제도의 성급한 도입에 불안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년 예산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국체수지 혹자기조의 정착이라는 새로운 여건변화에 대응, 재정의 통화관리 기능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새해 예산에 양곡기금의 한은 차입금 이자상환 7백50억원, 외국환 평형기금 2백억원, 대외협력기금 3백억원을 각각 책정하고 재정증권 발행 한도액을 2천억원에서 5천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양곡기금 이자상환액 7백50억원으로 한국은행은 연리10%의 통화안정증권 7천5백억원을 발행, 시중자금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이밖에 재정증권 발행 등을 통해 모두 2조원을 재정부문에서 소화, 내년도 통화 증가분 중 7∼8%는 재정에서 흡수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내년도 예산에서 복지 및 농어촌개발을 제외한 나머지 중점 사업은 정제체질 강화로 요약될 수 있다. 다목적 댐 건설이나 대단위 공단 등 직접 투자부문의 예산이 줄어들고 산업구조 조정·기술개발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경제개발 지원방식이 바뀐 것도 새해 예산에서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신성순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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