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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영태, 펜싱팀 창단 땐 정부가 빵빵한 지원한다 큰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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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88억원을 출자한 K스포츠재단의 설립을 주도하고 이 재단 설립 전날(1월 12일) 최순실(60)씨와 함께 ‘더블루K’를 세웠던 고영태(40) 더블루K 이사(전 대표이사)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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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2년여 전부터 전·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나 파격적 조건을 언급하며 펜싱 실업팀 창단을 제안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정부의 전폭적 지지와 거액의 계약금·연봉 등을 약속했다고 한다. 고씨는 패션잡화 브랜드 ‘빌로밀로’의 대표다. 빌로밀로 핸드백은 2012년 대선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하면서 ‘박근혜 가방’으로 유명해졌다.

98년 아시안게임 금 딴 뒤 돌연 은퇴
2014년 “실업팀 꾸리고 싶다”며 등장
창단 실패 1년 뒤 거액 내걸고 재추진
관광공사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
고씨 회사와 장애인팀 에이전트 계약

23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고씨는 무척 뛰어난 재능을 가진 펜싱 선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펜싱 금메달을 딴 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펜싱계에서 사라졌다. 동료 펜싱 선수들에 따르면 당시 고씨는 “내 목표는 최고의 펜싱 선수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고씨가 다시 펜싱계 인사들을 접촉하기 시작한 건 2014년 8월께다.

그는 펜싱 실업팀을 꾸리고 싶다며 전·현직 펜싱 선수들과 코치·감독들을 잇따라 만났다. 이 시기는 고씨와 친분이 있고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CF 감독 차은택(47)씨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고 차 감독이 “스승”이라고 부른 김종덕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된 직후다. 실제 고씨를 만난 펜싱 선수들과 코치들은 “고씨가 펜싱팀 창단만 되면 빵빵한 정부 지원이 뒤따를 테니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고 입을 모았다.

시드니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김영호(45) 로러스펜싱클럽 감독은 최근 기자에게 “당시 고씨의 제안은 허무맹랑하고 허황된 사업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10년 넘게 연락 한 번 없다가 어느 날 (고)영태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연습 공간에서부터 예산, 선수들 계약금에 연봉까지 모두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그래도 문체부 등에서 관련 서류를 모두 받아 오면 선수들을 모아보겠다고 말하자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거절로 펜싱팀 창단이 무산되고 1년3개월 뒤 고씨는 이번엔 한국관광공사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를 등에 업고 펜싱팀 창단을 재추진했다. 2015년 11월 고씨는 펜싱 선수 김모(2016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씨를 만나 계약금 1억5000만원에 연봉 50% 인상을 조건으로 영입 제안을 했다. 영입 제안을 받은 김씨가 ‘어디에서 비인기 종목인 펜싱을 그렇게 후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묻자 고씨는 “창단 후원사인 GKL이 카지노 사업을 하는 곳이니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또 내가 문체부와 각 정부기관도 꽉 잡고 있으니 믿고 따라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보다 두 달 앞선 같은 해 9월 문체부는 GKL에 “장애인 체육 선수들의 프로·아마추어팀 창단 시 전문 스포츠 대리인(Agent) 제도를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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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우려와 달리 고씨의 호언장담은 현실화했다. 장애인 펜싱 실업팀 창단을 준비하던 GKL은 지난 5월 고씨가 대표이사로 있던 더블루K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고씨는 최순실씨 소유 서울 청담동의 한 건물에 ‘엘리트 펜싱클럽’이라는 이름의 펜싱장 설립도 추진했다.

현직 실업팀 코치를 맡고 있는 펜싱계 관계자는 “설립(올해 1월)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신생사가 유명 에이전트를 모두 제치고 정부 산하 기관과 계약을 맺은 건 유례없는 일이다. 외부의 힘이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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