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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정국」 짙은 안개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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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기 국회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개헌 정국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최종 단계에 진입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간부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민정당이 개헌안을 단독 발의할 것이라는 관측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29일로 예정된 신민당의 서울 대회는 열린다, 못 열린다로 정국 긴장을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정국은 허다한 수수께끼를 안은 채 한 걸음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상태-.
민정당 내의 지배적인 기류는 이미 신민당과의 당대 당의 합의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판단 아래 신민당과의 합의는 없더라도 내각책임제 개헌을 가장 무리 없이 관철하는 방법론이 무엇이냐는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지난 18일의 당헌 특위에서 개헌안 단독 발의를 시사한바 있고 이에 대한 반응을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있다.
단독 발의에 대한 야당의 격렬한 비판과 아직은 성급하다는 여론이 일자 노태우 대표위원은 『회의 발의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 파문을 수습하고 있으나 실감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실정.
더구나 단독발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개헌 정국의 타개를 위한 엄포용이라기보다 실제 강행을 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분석하는 것이 점차 우세해 지고 있다.
민정당 내의 소위 현실론자들은 이 단계에서 더 이상의 대 신민당 설득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신민당과의 합의 개헌 가능성은 사라진 만큼 다수결에 의한 합법적 개헌, 의원 개개인 차원에서의 합의 확대를 추진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물론 여 대표와 주변 브레인들의 정국 구도와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개헌의 방향은 이미 정해진 코스로 줄달음 칠 수밖에 없다는게 일반적인 관측.
더구나 신민당의 서울 대회 추진은 이런 의지를 높여주고 있다.
이미 야당 내의 의원내각제 동조 세력을 규합하는 방법론까지 조심스럽게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우선 △제3공화국의 3선 개헌 등에 서 있었던 과거 야당의원의 이탈 과정이 검토되고 있으며 △개헌 후 일부 야당 세력에 대한 전국구 배정, 각료 배분 등의 예우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동조 세력 규합 방법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낙관론은 『야당 의원 90%가 내심 내각제를 지지하고 있다』 (노 대표)는 말처럼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급격히 동조 세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차피 정치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만큼 현실 정치에 민감한 야당 의원들도 마지막에 가서는 내각제 지지로 선회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미 민중 민주당 (총재 유한열)이 내각제 지지를 확실히 했으며 다수 국민당 의원이나 무소속 의원도 결국은 내각제를 지지하고 이런 과정에서 신민당 내에서도 자연히 이탈자가 생길 것이라는 예상.
비관론의 근거는 김대중·김영삼씨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민당 의원들의 이탈은 정치적 모험이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반대 급부가 없는 한 신민당의원들이 이탈하겠느냐는 관측이다.
이런 가설과 방법론은 앞으로 신민당의 서울대회 추이와 함께 윤곽을 확실히 드러 낼 것으로 보인다.
서울 대회는 결과적으로 여권 장외 세력의 입김을 더욱 높일 우려가 있으며 그렇게되면 민정당의 개헌 정국의 선택 폭은 급격히 축소 될 것이기 때문에 민정당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정당은 대표 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나 성사돼도 정국 타개에 큰 보탬이 안될 것으로 보여 정국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
직선제 개헌 추진 서울 대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신민당의원들은 요즘『언제 한대?』라는 물음을 서로 주고받으며 시니컬한 모습들이다.
합의 개헌은 멀찌감치 강 건너갔고 소위 「합헌 개헌」 즉, 민정당 일방에 의한 다수결 통과 강행 처리가 뻔한게 아니냐는 의구심 같은 것이 팽배 해 있는 판국에 서울 대회가 정국의 흐름을 더 거칠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기 때문.
이미 유성환 의원 구속 이후 전개되고 있는 급박한 여권의 정국 운영 템포를 응시하며『이번 서울 대회가 고비이며 결국은 늦어도 내년 초를 전후해 하지 않겠느냐』는 개헌안 조기 처리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정당 쪽에서 헌특 단독 운영과 개헌안 단독 발의란 말이 넌지시 흘러나오자 겉으로는『무슨 소리냐』고 핏대를 올리면서도 속으로는 『드디어 시작인가 보다』고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민우 총재의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엄청난 정통성 시비를 낳게 될 것이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 어조의 경고가 있었지만 민정당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한다면 저지할 방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민당의 고민이다.
한 중진 간부는 『지금은 여당의 「합헌 개헌」 전후의 거취에 대해 의원별·계파별 위상정리를 하는 기간』이라고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29일의 서울 대회를 「마지막 결전」으로 보는 쪽이 있는가 하면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 준비』의 의미 정도로 축소 해석하는 쪽도 있다.
동교동계는 어차피 여당 측의 조기 강행 처리 구상이 눈에 보이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대회 강행을 주장, 대회의 규모 등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이민우 총재와 상도동계는 주전시기를 야권이 유리한 내년 봄 이후까지 끌고 가야하며 그러기 위해선 헌특 재개에 희망을 남기면서 질서 정연한 서울 대회를 바라고 있다.
신민당은 이 대회를 통해 군중 동원 능력은 과시함으로써 실종된 개헌 논의와 식어버린 국민적 열기, 위축된 소속 의원들의 사기 등을 되살리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 지리멸렬하다시피 한 국면의 일대 전환과 그로 인한 여권의 조기 처리 구도를 지연시켜 보겠다고 노리고 있다.
그러나 진짜 속셈은 강행 처리 후 지분 확보라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최종 순간 참여·불참 어느 쪽을 택하든 유일한 무기랄 수 있는 「국민의 힘」은 항상 챙겨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 대회가 오히려 여권의 정치 구도를 여권 의도대로 실현 시켜주는 구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도 없지 않다. 스스로 올가미에 걸려 들 것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서울 대회로 당이 외부 압력을 거세게 받거나 하면 이미 속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생기고 있는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공동 보조를 다짐한 바 있는 비주류와 당풍 쇄신 파들은 책임 문제를 들고 나와 정기 국회가 끝나면 조기 전당 대회 소집 요구로 몰아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내부균열이 개헌 정국의 전체 흐름과 어떻게 얽혀들지 관심거리다. <허남진·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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