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침 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침잠이 많은 우리 식구들의 기상시간은 아침 8시쯤이다. 이 기상시간을 앞당기기 위하여 미국 「카터」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시작된 조깅 붐에 편승하여 조기기상을 시도했으나 조깅복만 남게 되었고, 약수터행도 10번쯤 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주저앉아 아침에는 계속 잠만 자는 버릇으로 곧 되돌아왔다.
날 닮아선 지 8살짜리 큰 딸 승희와 5살 짜리 아들 태웅이도 막무가내로 늦잠이고 승희엄마도 어느덧 닮아버렸다. 문제는 승희가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기상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고,깨워서 세수하고, 밥 먹고 옷 입혀 학교엘 보내는 것이 어찌나 힘드는지 드디어 승희엄마는 몸살이 나버렸다.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규칙이 아홉 시 땡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아무튼 하오 9시만 되면 무조건 잠자야 한다는 규칙을 세워 재웠다. TV에서『어린이 여러분 잠들 시간입니다 』하는 프로를 보여 주고『너희들도 저렇게 자야돼』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신기하게도 잠옷을 갈아입고 인사까지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승희 엄마는 고달픔 속에 보람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애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는 지, 요즈음은 결혼후 8년간이나 정성스럽게 갈아주던 당근즙도 지급을 중단했고, 가끔 맘내켜야 인삼 몇 뿌리 삶아 모든 보상을 입으로 때우며 내 앞에 내민다.
애들하고 씨름하는걸 눈으로 보면서 타협할 수도 없고 해서 가만있지만 내심 서운할 때가 있다.
옛말에 여자는 3번 변한다던데! 이제 2번째 자식한테 변할 때 이런 가 생각하며 꽥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지나가 버리는 요즘이다. 3번째 변하고 갈 데 없으면 4번째는 다시 내 차례가 되겠지 위안을 삼으며 .
이런 요즈음이지만 승희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내게서 엄마를 빼앗아 간 것보다 더한 기쁨과 흐뭇함을 나누어준다.
어느 날이랄 것도 없이 나날이 변하여 아빠 눈에 비치는 말과 행동은 내 맘에 꼭 드는 딸이 되어 나를 놀라게 해주는 것이다. 자식이란 이런 것인가!
이렇게 성숙해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인 나도 성숙해가는 것 같다. 삶의 의미는 반드시 예술에서 찾아야 한다던 생각들이 변해 보통생활의 즐거움에로 눈을 돌리게 해 내 스스로 평범한 아빠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 요즘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