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악순환」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날씨마저 스산한데 4백여명의 대학생이 감옥에서 풀려났다.
신문 사진에 소개된 이들의 얼굴은 언제 그런 야단스러운 데모를 했나 싶게 수더분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 학생들은 수사 검사와 지도 교수와 학부모의 「순화 면담」을 거쳐 반성문도 쓰고, 교수·학부모의 다짐을 받고 나서 석방되었다고 한다. 어떤 내용의 반성문을 썼는지, 교수와 학부모는 무엇을 서약했는지 모르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다시는 교도소에 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앞길이 창창하고 야심 만만한 젊은이들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공부바라지에 옥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부모의 심정으로도 그렇고, 세상 좀 조용했으면 하는 불특정 다수인의 생각으로도 그렇다.
요즘 국회에서 어느 장관이 보고한 구속 학생 수는 건대 농성 관련 1천2백46명을 포함해 모두 2천46명이었다. 이들의 죄명은 무겁기로는 보안법에서부터 집시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 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많기로는 1천4백24명에게 적용된 방화, 공공 기물 손괴, 폭력 혐의다. 총 구속 학생의 70% 남짓한 수다. 여기에 집시법 위반 혐의 학생까지 합치면 전체의 90%쯤 된다.
뒤집어 보면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은 전 구속 학생의 10% 미만이다. 이들도 물론 재판을 받아 경중이 가려지겠지만 소요에 가담한 학생이라고 모두가 불그레하고 국가 변란과 혁명을 획책하는 무리들은 아니다.
도리어 약간 비뚤어진 젊은이들을 옥살이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바로 잡아주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서 「바로 잡는다」는 말에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정 정파의 주장이나 권력의 이해에 영합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잡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라며 선량한 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 그 테두리를 존중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를 마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여당도 민주화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관점에선 누구의 의견과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다수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취하는 것인데 데모나 방화, 폭력이나 용공 구호, 증오와 저주 따위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작태는 문제 자체를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다.
생각이 옳다고 그 생각과는 걸맞지 않는 행동까지 옳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 학생들은 언제나 이 점을 헛되이 생각해선 안 된다. 이것이 분명치 않고는 「용공이다」, 「극좌다」하는 평판을 면할 수 없다.
이들 문제 학생을 뒤쫓는 정부 쪽에서도 「구속」과 「석방」의 끝도 없는 악순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문제의 핵심을 풀어 가는 근원적 접근에 노력 할 때이지, 데모만을 뒤쫓을 때는 아니다.
시위 학생 구속만 해도 전원 구속 원칙이나 엄벌주의가 능사일수는 없다. 그것은 일시적인 쇼크 방법은 될지 몰라도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으로는 미흡하다.
이번 건대 농성 관련 학생의 일부 석방은 으례 있으려니 했던 「조치」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근원에 다가가는 하나의 「징검다리」적 의미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