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빨리 확인돼 차라리 다행"|"김일성 생존" 이후…정부 각 부서·경제계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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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심상치 않은 조짐 예고>
김일성이 살아서 18일 상오 몽고당 제1서기장을 평양 공항에서 마중했다는 외신 보도가 정부 각 부처에 전해지자 평양 공항에 과연 김이 나오느냐, 안나오느냐를 보기 위해 초읽기에 들어갔던 정부 관계자들은 허탈감을 넘어서 몹시 심각해하는 모습.
관계자들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거의 신처럼 군림하는 김일성을 죽였다고까지 하면서 대남 스피커 방송을 통해 선전할 수 있겠느냐는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는 분석들.
특히 김일성이 최근 소련을 방문하고 나서 곧바로 사망했다는 거짓 대남 선전을 했다는 것이 아무래도 한반도의 심상치 않은 조짐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 각 부처는 이에 따라 이날 아침 김일성이 살아있다는 외신 보도를 접하고 나서 과연 김일성의 진의가 무엇이었나를 분석하느라 각 부처 관계관들이 모여 다시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부산스런 모습.
한편 「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심리전용으로 김일성의 사망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얼마 안 있어 죽을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김일성이 소련에 가서 구걸을 하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김일성이 「나의 죽음을 이용하라」고 단안을 내렸다면 충분히 가 능 할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이날 『김일성이 죽었든 살았든 대남 도발의 가능성은 일거에 높아졌다』고 분석한 바 있어 앞으로의 상황이 주목된다.

<사태 급변에 놀라움>
외무부는 18일 상오 김일성이 생존해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있자 사태의 급변에 놀라와 하며 사실 확인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 아직도 생존 사실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
외무부 관계자는 『김일성이 몽고의 공산당 서기장 영접 행사에 나타나느냐의 여부가 김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단서로 보고 이 행사를 주목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김이 나타났다는 외신 보도 자체도 북경발 보도여서 믿을만한 단계는 아니며 생존 확인 여부는 좀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피력.
관계자는 북경과 모스크바 측은 지금까지 김의 사망설을 계속 부정해 왔기 때문에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전하고 우리는 북한측 대남 확성기 방송 내용 등 여러 가지 징후로 보아 사망 또는 감금 등 증대한 변고가 있다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고 했다.
관계자는 『휴전선 방송이 오진우의 실권 장악을 주장한 것은 그 사실 여부를 제쳐두고라도 북한 내 변고에 군일부가 가담했음을 밝혀주는 징후』라고 주장.

<잇단 외신 보도 기다려>
김일성의 사망설이 처음 보도됐을 때부터 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통일원은 김이 살아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도 타 부처와는 달리 통일 문제 전문 부처답게 상황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
통일원 관계자들은 신중을 기하는 이유로 김일성 생존의 외신 1보가 신화사 및 북괴 「중앙 통신」을 인용, 보도한 것이고 상오 11시 현재 북한 중앙 방송이 아직 영접 인사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면서 좀더 기다려보자는 입장들.
허문도 장관은 이날 아침 간부 회의를 마치고 장관실에서 몽고 서기장의 평양 도착에 따른 외신 보도를 기다리고 있다가 상오 10시30분쯤 김이 살아 있다는 외신 보도 내용을 보고 받고 긴급 간부 회의를 다시 소집.

<"어쩐지 미심쩍더라">
경제 부처 관계자들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예컨대 남북한 경제 회담이 다시 열리고, 남북간 통상 관계가 어쩌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기대에 가까운 분석 (?)까지도 했었으나 김일성의 생존이 확인되자 『어쩐지 미심쩍더라니』하며 어이없어했다.
한 고위 관리는 『김이 살았건 죽었건 이번 김의 피살설이 우리 쪽에서 나왔으니 만큼 당분간은 정치적 긴장으로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며 우려하기도. 그러나 『장기적으로 김의 사망이 우리 경제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이 생각보다 빨리 확인된 것은 우리 경제에 조금이라도 실을 덜 가져오는 일이 아니냐』고 한마디.

<금강산 댐 중단 기대도>
18일 상오 김일성 생존이 확인되자 건설부는 꽤나 실망하는 분위기.
그도 그럴 것이 건설부는 그 동안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과 관련,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심 했는데 17일 김 사망설이 전해지자 북한이 내부 문제로 상당 기간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여 금강산 댐 건설이 중단되거나 적어도 늦춰질 것으로 기대했었기 때문.
그러나 김의 생존이 확인되자 한때나마 즐거워했던 분위기가 일순에 바뀐셈.

<내분 있은 것 틀림없다>
김일성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계에서도 얼떨떨해 하면서 『죽었어야 되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휴전선에서 대남 방송이 있었다는 점등을 들어 『북한 내에 무슨 내분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아니냐』며 미련이 남는 듯 북한 내부의 변화에 기대를 걸었다.
금융계는 『미확인된 사실을 정부가 너무 서둘러 발표한 것 같다. 또 언론도 너무 경솔했던 것 같다』며 정부와 언론을 비난하기도.

<공식 발표는 지나쳤다>
김일성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전경련·무협·상의 등 경제단체 관계자들은 우선 어이없다는 반응들이면서도 『신문이나 방송들이 좀더 신중한 보도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현대·삼성·대우 등 국내 각 재벌 그룹 총수들은 김일성 사망설이 전해진 16일 이후 거의 시간대별로 사태의 추이를 보고 받았는데 18일 상오 『김이 살아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대부분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들이었다.
일부 총수들은 진위를 좀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신문사에 되물어 오는 경우도 있었다.
모 경제 단체의 한 직원은 『대남 비방 날조·허위 선전을 일삼는 북괴의 대남 방송을 근거로 국가 기관에서 공식 발표를 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처사였다』며 이를 보도한 언론의 과잉 반응에 안타까와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또 계속 라디오를 틀어놓고 사태의 진전을 예의 주시하며 어느 때보다도 사망설이 크게 부각됐던 점을 감안하면 설사 김일성이 죽지는 않았더라도 모종의 사태가 있었음은 틀림없는 것 갈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모 그룹의 한 간부는 『김일성이 40년 동안 그토록 많은 욕을 먹었던 만큼 명도 긴 것 같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상호 정보 교환 분주>
사망한 것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도됐던 김일성이 버젓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18일 상오의 관청가는 실망과 허탈감이 겹친 착잡한 표정이었다.
상오 10시가 넘어 「살아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경제 기획원·재무부·상공부 등 경제 각 부처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어떻게된 셈이냐』며 정보를 교환하기에 분주한 움직임.
상공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신문 보도나 국방부 발표를 보고 꼭 죽은 것으로 믿고 있었다』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 공무원은 『살아 있다는게 정말이냐』고 반문하고 『몽고의 공산당 서기장이 북한을 방문한다는 보도를 보고 이상한 느낌은 들었다』며 신문의 자제를 촉구하기도.
그러나 김일성의 사망설에 따른 공무원의 비상 근무 태세 등 17일 시달된 조치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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