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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메뉴 추천해달라고 하니 주량부터 물어보는 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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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스타일리스트 김민지의 ‘복덕방’

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20석 안되는 작은 가게, 합석도 자연스러워
술잔은 모두 ‘화소반’, 데이트용 칫솔도 구비
전국에서 공수한 19종 막걸리 맛보는 재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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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을 오가다 ‘복덕방’이라고 쓴 작은 간판에 눈이 끌렸다. 실제로는 막걸리 주점이란다. 얼마 안가 초저녁에도 줄이 서더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혹시 연남동 ‘연남회관’ 하시던 분 아닌가요? 저 기억 안 나세요? 푸드스타일리스트이고….” “아, 그때 바비큐 소스 관련해서 비율 정보 주셨던…. 잘 지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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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병·잔 그림으로 만든 간판, 나무 소품과 사진들로 꾸며진 입구.

운 좋게 대기 없이 착석한 날, 주인장과 서로 구면임을 확인하자 반가움과 궁금함에 대화가 이어졌다. 연남동 때와 비슷하게 자유롭고 소박한 분위기다. 가게는 주인을 닮는다. 막걸리 전문점이야 새로울 게 없지만 냅킨이 날아가지 않게 앙증맞은 조약돌을 올려놓는 세심함이 남달랐다. 무엇보다 기본안주접시와 술잔 모두 ‘화소반’ 식기를 사용하는 센스가 돋보였다. ‘화소반’은 공방이면서 매니어층이 있는 보기 드문 도자브랜드다. ‘막걸리=찌그러진 양은사발’도 좋지만, 단정하고 손맛 좋은 매끈한 도자잔에 술을 채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테리어에 돈 쏟아 부으면서 식기는 대충 들이는 식당을 많이 봐서인지 ‘불과 20석도 안 되는 가게에서 신경 많이 썼네’ 달리 보였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막걸리는 총 19종. 이 가운데 2~3종은 매달 바뀐다. “전국 방방곡곡 우수하고 다양한 막걸리를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가 이유다. 매번 양조장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셔본 뒤 가게에 들인다는 게 주인장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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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고추장삼겹볶음.

혹시나 “이 안주에는 무슨 술이 좋을까요?” 물었을 때 주인장이 “몇 병 드실 건데요?” 되받아쳐도 언짢아하거나 놀라지 마시라. 안주에 맞는 술을 단맛의 정도에 따라 순서를 정해 권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오는 ‘엄마표’ 음식들. 주인장의 모친이 차려내는 요리는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숙성시킨 양념장을 사용한다. 적당히 짭짤한 간은 술을 부르고, 기교나 장식성 없는 플레이팅은 깔끔하고 소복한 게 우리 음식답다. ‘짠~’ 하고 잔 부딪히는 소리도 도자기라 그런지 더 흥겨운 느낌이다.

또 하나, 나를 반하게 하는 포인트는 화장실이다. 비록 남녀공용이지만 웬만한 레스토랑 화장실 못지않게 깔끔한 공간에 빳빳한 수건, 드라이플라워와 함께 일회용 칫솔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아마도 데이트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남녀 간 ‘불꽃 튀는 순간’을 배려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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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직접 쓴 메뉴판에선 주인장의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강 사장이 몇 분 만에 스케치한 것이라는 가게 간판도 눈여겨보시길. 시민참여 커뮤니티 ‘사인프론티어’에서 선정하는 ‘시민이 뽑은 아름다운 간판’ 4월의 최우수작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감각이 있다. 심지어 가게 앞에 걸린 ‘막걸리 집’이라는 나무 현판은 부친 솜씨라고 하니, 아무래도 유전자의 힘인가 보다.

공간, 특히 타인과 함께 하는 곳은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중요하다. 붙임성 좋고 성실한 젊은 사장과 동네 젊은이들의 어머니로 사랑받는 그의 모친, 눈만 마주쳐도 함박미소를 띄우는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까지, 이들 셋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복덕방’을 환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 불편한 나무의자, 비좁은 테이블에 아랑곳 않고 합석도 불사하는 건 이 자연스러운 에너지 때문이다.

추천 메뉴는 따로 없다. 본인이 원하는 취향을 얘기하면 사장이 권해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아 기분 좋다’ 하며 잠들 수 있을 것이다. 단, 흥에 겨워 너무 많이 마시지만 않는다면.

복덕방 막걸리집

●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동 414-14 (포은로8길 5)
● 전화 : 070-8864-1414
● 영업시간 : 17시~03시. 일요일 휴무/ 월요일 때때로 휴무(양조장 출장)
● 주차 : 불가,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 메뉴 : 떡갈비(1만2000원), 깻잎고추장삼겹볶음(1만6000원), 코다리구이(1만2000원)
● 드링크 : 도문대작(1만1000원), 호랑이배꼽(1만5000원), 우렁이쌀막걸리(1만원), 팔공산미나리막걸리(7000원), 지평막걸리(6000원) 외 7종

이주의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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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푸드스타일리스트. 서울 서교동에서 스타일링 공방 ‘꾸밈’을 운영하며 업체 메뉴 개발 및 촬영, 제품 스타일링, 소품 디자인 제작 등을 하고 있다. 영화 ‘모던보이’ ‘부당거래’ ‘암살’ ‘아가씨’ 등과 LG 디오스 등 다수의 CF에서 공간연출 및 테이블세팅·푸드스타일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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