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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부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5년전 신혼때는 남비·수저·밥공기를 비롯하여 몇가지 간단한 주방용품들과 이부자리, 그리고 헌책상 하나와 백여권 남짓한 책들이 우리집 살림살이의 전부였었는데 지난 가을 이곳으로 이사 올때는 무슨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들이 그렇게 늘어났는지 대형 트럭으로 한차 가득했다.
그런데 또 이사와서 소퍼랑 식탁·화장대등 필요한 가구 몇가지를 더 들여놓았으니 다음번 이사할 때는 두 트럭은 족히 될것같다
정말 결혼초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부자(?)가되었다 집도 13평짜리 허름한 시민아파트에서 두배정도 넓은 25평 신축아파트로 옮겼고 식구도 남편과 나 단둘 뿐이었는데 연년생으로 두 아이들이 태어나는 바람에 지금은 네식구로 늘었다.
또 남편은 직장에서 승진을 했고 나는 20대에서 30대로 변신을 해버렸다.
그러나 그 어떤것 보다도 몰라보게 변해 버린건 내 마음이다. 결혼전 단간 월세방도 좋고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다 해도 오로지 그이만을 따르겠노라고 마음속으로 굳게굳게 다짐하고 맹세했건만 어느새 그 마음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으니 정말「내마음 나도 몰라」다. 다행히 결혼 비용을 최대한 아껴서 좀 허술하고 작긴 해도 처음부터 우리집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넓고 좋은 새집으로 이사만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니 이제는 또 엉뚱한 허영심이 봄날에 새싹 돋아 나듯이 고개를 내민다.
전자제품들도 신형으로 바꾸고 싶고 철따라 새옷도 사 입고 싶고 귀걸이·팔찌같은 보석 들도 주렁주렁 매달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렇듯 분수를 모르고 살다보니 마음은 언제나 텅빈 가난뱅이다.
결혼초 연탄 백장과 정부미 20㎏만 있으면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던 그때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을까 하찮은 일에도 감사할줄 알며 늘 마음이 부자이던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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