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사태 놓고 진퇴 잡곡의 신민|운동권 학생, 동지인가 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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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원 문제가 심각해지고 이른바 좌경·용공의 이념 문제로 번지는데 따라 신민당의 고민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유성환 의원 사건 때도 그랬지만 신민당은 건국대 사태가 터지자 다시 한번 당의 입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신민당으로서는 재야와 운동권에 대해 2·12 총선에서 신세를 졌고 그후 직선제 개헌 추진의 우군으로 이들을 간주해왔지만 오늘날 이들이 좌경·용공이란 이념문체의 회오리에 빠져들자 이들을 지지하지도, 배척하지도 못하는 곤혹스런 상황으로 몰린 것 같다.
이념 문제에 관한 한 40년에 걸친 반공 전통 야당을 자처하는 신민당이지만 오늘의 운동권양상을 놓고는 어디까지를 반 정부 투쟁으로 보고, 어디서부터를 좌경·용공으로 보아야 할지 나름대로의 선을 긋지 못하는 것 같다.
학생들을 두둔하자니 『용공 비호』 라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크고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그들을 꾸중할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다.
학생들의 반 정부 주장도 넓게 보면 자신들의 「민주화」와 그 궤를 같이 하는게 분명해 이 둘을 수용해야하지만 그러기엔 그들의 흐름 속에 포함돼있는 과격한 좌경·용공적 요소를 도무지 소화 할 수가 없는 처지다.
당의 한 간부는 『개헌 정국의 길이 바쁜데 이념논쟁·학원문제가 튀어나와 달갑지는 않으나 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도 없고, 학생문제를 다루자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편이니 이거야말로 진퇴 양난』이라고 짜증스러워 했다.
건국대 사태는 이러한 난처한 신민당의 입장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게 했다.
1천명이 넘는 대량 구속사태를 맞고서도 『잘했다』 『못했다』의 분명한 태도 표명을 하지 못하고 『용공분자가 있다면 처단이 마땅하겠지만 용공 누명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어정쩡한 모습만 보여줬다.
시위 첫날부터 확대 간부회의·총재단 회의를 뻔질나게 열고 비상 대기조 편성, 현장 출장, 진압 후 진상 조사반 구성 등 부산한 대책을 세우긴 했으나 시종일관 대책회의 결론은『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태라는데 참석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는 것과 『물리적 진압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경고한다』는 두 가지 뿐 이었다.
총재단은 『학생들의 주장은 비 민주·독재청산이 주테마며 그러한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극렬 구호가 섞이게 됐다』 『학문과 현실의 괴리 현상에서 나름대로 이상으로서의 사회주의 경향을 띠게 된 것』 『민주화만 되면 해결되는 문제』 등 구구한 의견을 냈으나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신민당이 학생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부담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3 인천사태 때 부터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자신들의 지지세력이며 우군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었다.
2·12 총선 과정에서 신당 바람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는데 큰 역할을 해줬고 지난 봄 개헌 추진 대회 때도 군중 동원·구호 제창 등으로 개헌 열기를 고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인천 사태에서 부터는 반미·용공·좌경 구호 등 신민당과는 다른 목소리가 표출됐는가 하면 『신민당은 각성하라』는 대 신민당 비난 구호가 등장함으로써 이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장외 투쟁을 중단할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유성환 의원 발언 파동 때도 신민당은 사실 미묘한 입장에 처했었다. 여권의 유 의원 사건 처리를 격렬히 비판하면서도 문제된 유 의원의 국시론 같은 것을 당론으로 뒷 받침하지는 않았다. 또 그후 장기욱 의원이 의사 진행 발언에서 『유 의원 발언은 신민당논』이라고 선언한 것이 문제돼 민정당이 신민당의 태도를 밝히라고 요구했을 때도 기세대로라면 『당론이다』고 맞받을 분위기였지만 끝내 이 요구를 「묵살키로」했던 것이다.
신민당은 최근 일련의 사상논쟁·학원문제에 직면하여 『당논은 자유 민주주의에 의한 평화통일』이며 『신민당은 한민당에 뿌리를 둔 40년 전통의 보수 반공정당』이라고 기본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신민당 내부에는 이에 따른 세대간·계파간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며, 이것이 이 문제를 대응키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3일의 의원 총회는 이러한 당의 모습을 어느정도 표출시켰다.
이철승 의원으로 대표되는 보수 그룹은 『학원가에서 좌경·용공차원을 넘어 6·25가 북침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현실이 됐다』고 개탄하고 『순수 반정부 운동은 분리, 처리돼야겠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신민당도 초당적으로 대처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의원은 『당내 용공 프락치가 있으면 내보내고 난 뒤 정부를 공격하자』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이에 반해 장기욱·이철 의원 등 당내 젊은 그룹들은 학생들의 주장을 낳게 한 사회적 토양을 중시하며 학생들을 이해하고 정부의 학원정책에 집중적으로 화살을 겨눈다.
이철 의원은 『학생들은 독재를 미워할 뿐이다. 그들은 적색독재와 똑같이 백색 독재도 배격한다. 학생들은 결코 북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경우 학원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이철승 의원 얘기는 섭섭하다』고 공박했다.
중간 그룹들은 정부의 강경 대책과 학생들의 과격 행동을 함께 못 마땅해 하는 모습이다.
유성환 의원 발언이 문제됐을 때도 이민우 총재 등은 사석에서 『왜 쓸데 없는 말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나』며 못마땅해한 반면, 일부의원들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라고 상당히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건국대 사태에 대해 이철 의원은 『공산·용공주의자 처단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는 용공이 조작됐다는 점이다』고 「조작」부분에 주 포인트를 두었다.
신민당 건국대 사태 진상 조사반도 조사의 시각은 그 쪽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개 반 14명의 조사반은 지난 1일부터 건국대와 경찰서·병원 등을 둘러보고 가담 학생들을 면담한 뒤 『조장한 혐의가 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만나 본 학생들 중엔 북한측에 동조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면서 『일방적으로 용공으로 모는 것은 그 저의가 의심스러운 만큼 옥석을 분명히 가려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원 문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한 당내인사는 학생 운동권을 △단순한 민주화·반독재 투쟁 그룹(절대다수) △현 체제가 자신들이 그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새로운 사회 체제를 구상하는 이상주의자 △확인되지는 않지만 용공 내지 북괴 편향자 등 세 갈래로 분류하고있다.
그는 『정부·여당이 이들 전부를 용공으로 몰아 세움으로써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용공의 구획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신민당은 현재로서는 정부·여당에 대해 『용공 조작』을 무기로 공격하는 편법을 사용하는 단계이지만 좌경·용공문제가 계속될 경우 당의 입장을 보다 선명히 밝히지 않을수 없는 시점을 맞을지도 모른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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