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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2백74명의 구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백93명의 대학생이 단번에 구속될 때 만해도 세계 기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해 12월 민정당 당사 점거 사건 때의 일이다.
그후 1년도 못돼 오늘은 1천2백74명의 대학생을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되었다.세 자리 숫자에도 놀랐는데 지금은 네자리 숫자의 구속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게 된다.
온 나라가 들썩했던 지난봄의 인천 사태 때도 구속자는 불과 1백29명이었다. 「불과」라는 표현을 쓰기도 겸연쩍은데 1천2백74명의 숫자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들 구속자 중에는 이미 데모를 하다가 붙잡혀 혼이 난 경력이 있는 학생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모범 답안에 가까운 「반성문」까지도 시원스럽게 써놓고 훈방됐던 전력도 갖고 있다.
결국 연행과 엄포, 때로는 폭력, 심문, 반성문, 사면, 훈방과 같은 곤혹스러운 일들이 학생들의 데모를 줄이거나 막는데는 무위했다는 말인가.
이젠 짧지도 않은 우리 나라 헌정사에 빼어 놓을 수 없는 도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치불안→데모→구속→사회갈등→석방」의 판에 박힌 과정이다.
그러나 40여년을 두고 이 도식은 「석방」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시 「정치불안」으로 연결되어 개미 쳇바퀴 돌 듯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시차의 변화는 있을 망정 도식의 쳇바퀴는 이제나 그제나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용공·좌경 구호까지 끼어 들어 그 쳇바퀴가 더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그 쳇바퀴를 몇 차례나 더 돌려야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도식의 고리를 어디에선가 끊어야할텐데 그럴 기미는 아직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필경 1천2백74명의 구속자들은 흑백이 가려지면 더러 석방자도 생기겠지만 그것으로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번엔 구속자들을 재판하는 일이 남았다.
그 재판이라니 얼마나 법석을 부려야 하겠는가. 가도가도 첩첩산이라는 말이 하기 좋은 속담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외국신문들을 펼쳐보면 나라 체면도 생각해야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미국의 헤럴드 트리뷴지(국제판)는 매일같이 1면 한가운데에 대문 짝만한 크기로 한국의 데모사태를 보여주고 있다. 엊그제는 마스크를 쓴 경찰들이 허리를 굽힌 학생들을 줄줄이 연행하는 사진이 보기 드문 크기로 실렸다.
어디 신문뿐인가. 바로 어제 유럽에서 온 한 외국인은 공항에서 제일성이 『안전하고 조용한 호텔을 잡아 놓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유럽의 TV뉴스에 보도된 한국사태를 보고 금방 무슨 변이 날줄 알고 있었다.
『바깥 세상이 뭐래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로 치면 21세기도, 나라도 생각할수 없다.
안팎 어디로 보나 그 끝도 없는 불안의 도식은 무한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그만…』하는 절규는 정부가 예뻐서도 아니요, 데모학생이 미워서도 아니다. 우리 국민의 생존을 위한 우리의 절박한 호소다.
건대 농성사건은 네 자리 수자의 구속자 기록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고 풀어가는 노력만이 도식의 고리를 깰 수 있다. 정치인들은 그 점에서 깊은 반성과 함께 책무를 느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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