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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소방관 추모비 유족이 세우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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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서울 홍제동의 연립주택 밀집지역. 이면 도로를 마주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연립주택 안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도마질 소리, TV 소음, 아이들 웃음이 흘러나왔다. 3~5층 높이의 연립주택들 사이로 이보다 조금 낮은 2층짜리 연립주택이 하나 서 있다. 15년 전인 2001년 3월 4일 새벽 이 자리에 있던 연립주택이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은 5분여 만에 잡혔다. 60대 집주인은 “1층에 아들이 있다”고 애원했다. 소방관 9명이 생존자를 찾아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건물은 낡고 물을 많이 머금은 상태였다. 소방관들이 진입한 순간 건물은 ‘우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제복 공무원 홀대하고 희생자엔 무관심

소방관 6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홍제동 화재’였다. 박동규(46) 소방장, 김철홍(37)·박상옥(33)·김기석(43) 소방교, 장석찬(35)·박준우(31) 소방사 등 서울 서부소방서(현재의 은평소방서) 구조대원 여섯 명이 숨진 채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안에 있다던 집주인 아들은 일찌감치 건물을 빠져나와 있었다. 그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한테 혼나 술을 먹고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자백했다.

안타까운 희생을 계기로 소방관·경찰·군인이 공무를 수행하다 숨지거나 다쳤을 때의 보상제도에 사회적 관심이 쏠렸다. 당시 알려진 현실은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부상을 당해도 요양기간은 정부로부터 2년까지만 인정받았다. 이를 넘기면 퇴직해 자비로 치료를 해야 했다. 이듬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제2연평해전)에서 고(故) 윤영하 대위 등 6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들은 규정이 없어 ‘전사’를 인정받지 못했다.

소방관·경찰관·군인은 국민의 안전을 최일선에서 책임진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는 이들이 희생됐을 때 잠시 관심을 가졌을 뿐 곧 잊어버렸다. 홍제동 화재 당시 정부로부터 2년만 인정받던 요양기간이 ‘완치 시까지’로 바뀐 것은 무려 10년이 지난 2011년이 돼서다.

정부는 올해 안에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양한 위험 직무에 대한 보상, 유족의 생계 보장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선진국 여부는 사회가 소방관 등 위험직 공무원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로 판별할 수 있다. 북유럽 등에선 소방관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지만 한국에선 이들을 홀대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사회를 위해 순직한 이들을 추모하는 데도 소홀하다. 홍제동 사고 이후 순직한 소방관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유족들이었다. 이들은 남편·아버지·아들·형제를 잊지 않기 위해 자비를 들여 이들의 얼굴을 동판에 새겼다. 추모비는 서울 서부소방서에 있다가 2013년 서울소방학교로 옮겨졌다. 추모비 뒷면엔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새겨 있다.

‘저의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소방학교 관계자는 “우리 소방관들을 제외하곤 이곳에서 참배를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홍제동 사고 당시 순직한 6명과 함께 연립주택 안으로 뛰어 들어간 동료 3명은 부상을 극복하고 일부는 여전히 소방대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측은 “당사자들이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방관 24명이 화재 진압 중 숨졌고 3241명이 다쳤다. 지난해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제목의 책을 낸 오영환(28) 소방교는 “소방관의 처우가 개선돼야 하는 것은 위험한 직업이라서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소방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회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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