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識字憂患 -식자우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1호 29면

한 평생 살면서 때론 모르고 지나는 게 나을 때가 적지 않다. 사사건건 다 알고 참견한다고 해서 꼭 해결될 일도 아닌 게 많기도 하다.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국 『삼국지(三國志)』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유비(劉備)가 천하의 전략가 제갈량(諸葛亮)을 얻기 전에는 서서(徐庶)란 인물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유비와 대립하던 조조(曹操)로서는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서 꾀를 냈다. 우선 서서가 유명한 효자라는 것을 알고는 그의 어머니인 위부인(衛夫人)의 힘을 빌려 서서를 불러들이려 했다. 그렇지만 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명필인데다 의리가 있는 여장부였다. 그녀는 ‘어머니 생각은 말고 한 임금만을 잘 섬기라’는 격려로 오히려 서서의 유비 보좌를 지지했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천하의 조조가 아니다. 조조는 이번엔 위부인의 필체를 모방한 서신을 서서에게 보내 마침내 그를 집에 돌아오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들을 본 위부인은 처음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자신의 글씨를 모방한 위조 편지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을 깨닫고는 “여자가 글자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구나”라며 탄식했다. 여기에서 ‘여자식자우환(女子識字憂患)’이라는 말이 나왔다.


소동파(蘇東坡) 또한 ‘석창서취묵당시(石蒼舒醉墨堂詩)’에서 이렇게 읊었다.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 이름만 대충 쓸 줄 알면 그만둘 일이다(姓名粗記可以休)’라고 말이다. 소동파의 말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는 체 하다 인생을 망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뜻만큼은 높이 살만 하다.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기 쉽고, 나무에 잘 오르는 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기 쉬운 법이다. 한데 우리 사회엔 최근 자신의 지식을 이 세상에 뽐내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캠퍼스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깊은 연구에 천착해야 할 교수들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구름같이 정치권으로 몰리고 있다. 이른바 폴리페서들이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망치는 일이 없게 되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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