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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이냐, 파괴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요즘 극렬 학생들의 구호며 벽보, 선언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갖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난 40여 년 동안 갖은 간 난을 다 겪으면서도 오늘까지 꿋꿋이 살아온 보람이 이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통한 마음 억누를 수 없다.
지금 사흘째 건국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학생들의 연합시위 농성은 그 구호와 행동, 그리고 그 근저에 흐르는 이념을 보면 그것은 분명 이 사회의 개선이나 발전보다는 차라리 파멸을 지향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회가 그들의 주장대로 이끌려 간다면 한마디로 김일성 집단에 대한 전면적, 무조건의 투항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같은 민주 파괴와 용공 투항에 반대하는 것은 어느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결단이다.
우리의 이같은 절규에 가까운 주장은 움직일 수 없는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
첫째, 우리는 민족분단의 책임을 전적으로 반탁 우익 진영에 돌리는 좌경 학생들의 역사 해석을 거부한다.
지금 학자들 사이에 분단책임이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확고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분단이 미소의 강대국 냉전전략과 우리 민족의 좌우 분열이라는 두 요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비극이라는 점이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재 단결에 성공했다면 분단을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단결을 반대한 세력은 반탁 세력이 아니라 반탁에서 하루 아침에 찬탁으로 돌아선 좌익 진영이었다.
둘째, 우리는 6·25가 반미 민족해방투쟁이라는 좌파 학생들의 전쟁 관에 동의할 수 없다.
6·25는 분명히 평양 공산집단의 선공으로 개시됐다. 김일성은 49년 모스크바와 북경을 방문하여 소련과 중공의 지원약속을 받고 이듬해 남침을 개시했다.
당시 미군은 이미 남한에서 완전히 철수한 상태였기 때문으로「미국으로부터의 민족해방운운」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째, 우리는 주한미군에 대한 좌경 파의 가치판단에 귀 기울일수 없다. 그들은 주한미군을 『민족의「원쑤」,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라고 북한의 맞춤법과 논리를 빌어 매도하고 그들의 축출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우리주변의 4강 중 한반도에 대한 야심이 가장 적었던 나라가 미국이다. 러시아·중국·일본이 한반도를 놓고 제국주의적 쟁탈전을 벌인 19세기후반기 이래 우리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미국은 항상 우리의 반 북방세력(러시아경계 파)의 요청에 의해 한반도에 개입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미군이 물러날 경우의 한반도 사태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북방 공산진영의 지원을 받는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하는 전의를 북돋워 줄 것이며 전력에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우리로서는 공산화의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다.
네째, 우리는 반공이「민족분단의 이데올로기, 미제의 식민지 이데올로기, 민주화세력 탄압 이데올로기」이며 따라서『반공을 까부수자』고 외치는 좌경 학생들의 반「반공」관을 심히 우려한다.
물론 반공이 우리 국시나 건국이념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소련·중공과 북한을 포함한 대륙의 거대한 공산세력과 대치하면서 우리가 오늘날까지 생존을 유지하고 그 속에서 자유와 성장을 누릴 수 있었던 정신력의 토대는 분명히 반공산주의 이념무장이었다.
우리가 반공노선을 취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포함한 서방 자본주의로부터 국가 안전보장이나 경제건설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오늘 이 정도의 생활수준을 성취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상·이념적 다원화는 불가피하며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사회의 발전과 보다 나은 민주화를 지향할 수 있을 때 가치가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사회의 현실분석과 경험을 통해서 창출된 우리 자신의 이념과 사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좌파 학생들은 그런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북한의 대남 선전 구호와 논리를 그대로 옮겨다 외치고 있다.
평양의 내각기관지「민주조선」의 반한 논조를 그대로 써서 서울대에 게시한 것도 궁색 스럽거니와 이번 건국대 시위에서는 북한의 대표적 가극「피바다」의 대사를 옮겨 쓴 것은 실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어떤 사회운동도 성공하려면 새 질서를 갈망하는 사회적 분위기,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조직적 지도력, 그리고 세상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좌파운동은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채 파괴를 위한 저항만 일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걷잡기 어려운 방향으로 계속 분열돼 나가고 있다. 이것을 수습하고 좌경 세력을 고립시키는 길은 보다 살기 좋은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룩하는데 있다. 그것은 통일과 독립, 자유화, 근대화를 기본요소로 하는 구심적 이데올로기이기도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층이 이같은 신념으로 정신을 무장하고 민족공동체의 발전과 복지를 최상의 덕목으로 받들어 소아를 극복할 때 오늘의 분열도 치유돼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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