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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수극진화하는운동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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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8일 상오9시 건국대학생회관 게시판.
모조지에 붉은색과 검정색매직펜으로 쓴「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는 『6·25는 남한땅에 친미예속적인 괴뢰정권을 세우고, 분단을 영구화시키려는 미제에 반대하는 범민족적인 민족해방투쟁이었다는 배괴의 대남모략선동내용을 그대로 담았다.
더 나아가 『반공이데을로기는 반민중적·반민족적·반민주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깨부숴야 한다』며 반공을 전면거부하고 나섰다. 벽보를 불이고 철야농성까지 별인 학생들은 26개 대학의 자민투·민민투 소속 좌경학생들.
지난 24일 하오1시 서울대도서관앞 광장.
3백여명의 학생이 「미제와 친미군사파쇼타도 및 범민주애국세력 연대투쟁을 위한 관악애국학우 다짐대회를 열고 있었다.
『친미군사정권 타도하고 자주민주정부 수립하자』
『자주통일 가로막는 미국놈들 몰아내자』
배괴의 선전전단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급진좌경구호가 터져나왔다. 대학건물 벽에도 쓰여졌다. 이날 집회는 경찰의 수배를 받고있던 자민투위원장 정현곤군 (22·지리교육4·제명)이 이끌고있었다.
집회는 1시간30분만에 끝났다. 정군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 교문으로 나가 굳센투쟁의지를 보여주자』 한껏 목청을 돋운 정군의 지휘에 따라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부딪쳐 그야말로「굳센 투쟁의지」를 보여준 학생은 겨우 50여명. 3시간이상이나 계속됐다.
학생운동의 이 같은 양상은2,3천명씩 모여 학원문제나 정치현실을 놓고 벌이던2∼3년전의 집회나 시위와는 대조적이다.
『83년 학원자율화직후만해도 보통 2천∼3천명이 모여 거의 매일이다시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학교가 온통 몸살을 앓았지만, 그때만해도 대학가 통했다』 는 서울대학생과의 한 직원은 『요즘은 그때에 비해 행동하는 학생수는 10분의1이하로 줄어든 반면, 행동의 양상은 오히려 10배나 과격해지고 심지어는 배괴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어 지도가 거의 불가능한 상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운동은 지난 2∼3년 동안 그 대상이 학원문제→사회· 정치 현실→체제문제로 변질되고 운동의 주체도 비교적 학생들의 의사를 수렴한 총학생회에서 일방적 급진주장을 펴는 각종 「투쟁위원회」로 옮겨가면서 점차 과격한 소수만의 극한투쟁 양상을 띠어왔다.
지난3월 「반전· 반핵 양키고홈」 이라는 생경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등장한 서울대의 자민투노선이 점차 각 대학으로 번져나가 잇따라 일어난 반미시위와 미대사관·미문화원등 미국관계기관의 점거기도등이 대표적인 예.
지난4욀28일 서울대「반전·반핵 평화옹호투쟁위원회」위원장 이재호군 (22·정치4)과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군(22·미생물4)등 2명이 전방입소교육을 미제의 용병교육이라고 주장, 거부시외를 주도하던 중 함께 분신자살했고 5월11일에는 서울대와 고대생 21명이 부산 미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최근 학생운동의 양상을 멀리서 지켜본다는 고대 이모군 (22·법대4)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따르는 보상은 없고, 특히 올들어 머리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급격하게 나오는 구호들에 현기증을 느낀다』 고 했다.
지난해부터 나오기 시작한 대학간 연합시위는 참여학생소수화에 대한 운동권 학생들의 자구책. 이른바 연대투쟁으로 불리는 이 같은 시위양상이 이제는 일상화됐다.
28일 건대시위가 최근에 나타난 가장 대규모의 연합시위였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금년 들어 학생시위가 자민투와민민투등 2개 세력에 의해주도되면서 참여학생수가 3백명선으로 크게 줄었다』며『이는 자민투등이 내세우는 주장이 매우 급진적이어서 그 동안 묵시적으로 시위에 동조해온 학생들이 빠져나간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의 시위를 지켜보노라면 소수화와 과격화현상이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참여학생이 소수화되자 과격화와 함께 연합시위, 학기중과 방학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시위, 교내외를 가리지 않는 시위양상이 나타나고있다.
방학중인 지난8월1일 고대에서 있었던 9개대학생1천여명의 「현특위분쇄 및 미제의 경제침탈저지 총궐기대회」와 같은 달 14일 한대에서 있었던 13개대학생 1천2백여명의 「미제축출과 친미예속정권타도 총궐기대회」등이 그것이다.
당국은 학생운동권을 ▲주도세력 (0·3%정도)▲적극가담세력 (4·7%정도)▲단순동조세력 (45%)▲분위기세력(50%)으로 파악했었으나 근래이념·행동의 과격화에 따라 95%에 해당하는 동조세력과 분위기세력은 운동권으로부터 사실상 분리돼 현재는5%내외 주도세력·적극가담세력만이 남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학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학생시위의 두드러진 특징은 소수·과격화』라고 말하고 『최근 체제문제와 관련해 급진사상을 펴온 세력이 국민이나 동료학썽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자 그중 일부학생들이 북괴의 이론을 원용하고 북괴방송이나 전단을 통해 좌경의식화됨으로써 자생적 사회주의자가 생겨나고있다』고 분석하고『이들을 동조가능세력으로부터 완전 분리· 차단하기 위해서는 동조세력의 현실불만에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개선노력이 앞서 체제에 대한 신뢰가 확보돼야한다』 고 지적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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