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거진M|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아수라’, 핏빛 재현만 있고 상상력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문명은 곧 확장의 역사인데, 현미경과 망원경이 눈의 한계를 넘어 확장된 것이라면 전화기는 귀의 확장”이라고. 여기에 덧붙여 “책은 기억력과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 상상력의 확장으로 인해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된 것이 아닐까. 이는 상상력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수라’는 캐릭터에 상상력을 동원하지 못한다.
평면적 인물들 위에 가혹한 현실만 있을 뿐,
상상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9월 28일, 두 영화가 나란히 개봉했다.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와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하 ‘미스 페레그린’)이다. 특히 ‘아수라’는 정우성·황정민·주지훈 등 ‘어벤져스급’ 남자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러니 개봉 첫날 관객은 당연히 ‘아수라’에 몰렸다. 그런데 ‘미스 페레그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수라’를 둘러싼 평가가 엇갈린 데 비해, ‘미스 페레그린’에 대한 평가는 꽤나 일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바로 상상력이 있다. 버튼 감독의 상상력에 대한 호평 말이다.

김 감독 역시 버튼 감독만큼 자기 스타일이 강한 연출가다. 낭만적 남성미, 회고적 폭력성, 퇴폐적 허무주의 등이 그가 ‘비트’(1997) 이후 한국영화에 불어넣은 일종의 개성이다. 일례로 ‘무사’(2001) 속 황량한 사막의 외로운 무사 이미지는, 김 감독이 추구해 온 남성적 허무주의의 끝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수라’는 누아르 장르에 응축 가능한 낭만성·폭력성·허무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그러니 ‘김성수 감독다운 영화’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기사 이미지

[사진 `아수라` 스틸컷]

그런데 ‘아수라’에서 피 튀기는 재현이 아닌 상상력의 흔적을 찾긴 어렵다. ‘미스 페레그린’은 판타지 장르의 영화이고, ‘아수라’는 현실이 반영된 사실주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영화에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사실적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의 행간을 채울 상상력 말이다. 그런 점에서 ‘색, 계’(2007, 이안 감독)는 훌륭한 상상력의 예시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색, 계’(장아이링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에는 의외로 정사 장면이 단 한 차례도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내 몸을 뱀처럼 파고들었다”라고 서술할 뿐. 이안 감독의 영화에 등장했던 강렬하고 파격적인 정사는, 남녀 주인공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한 상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반면 ‘아수라’는 캐릭터에 상상력을 동원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부패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불가피한 선택, 악질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부도덕한 행동 등에 대한 입체성이 부족해졌다. 평면적 인물들 위에는 가혹한 현실만이 점입가경으로 쌓여 간다. 물론 이것을 상황에 억눌린 인간상의 묘사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상력은 이야기 속에서 더욱 첨예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편 ‘미스 페레그린’은 미국산 판타지영화의 최종본처럼 느껴진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에 부딪치는 것은, ‘엑스맨’ 시리즈(2000~) 등 수퍼 히어로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설정 아닌가. 특정 시간대가 반복되는 ‘타임 루프’ 역시 판타지 장르의 단골 소재다. 이 영화는 이처럼 흔한 상상들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무거운 현실 위에 세웠다. 버튼 감독은 그 전쟁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착하지 않고, 코믹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전투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적으로 설정한 후, 그 괴물과 싸우는 방식을 경쾌한 상상력으로 담아낸 것이다.

비리 정치인과 독종 검사 사이에 낀 형사의 심리를 파고든 ‘아수라’ 그리고 나치의 무차별 폭격 앞에 놓인 소수자를 다룬 ‘미스 페레그린’.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영화 속 현실이 더 엄혹할까. ‘현실이 가혹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말은 그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영화를 통해 잔혹한 현실을 보여 주고 싶다면, 오히려 사실 자체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더 필요할 듯하다. 세상이 폭력적이라고 해서 그 재현 양상마저 폭력적이어야 할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상상력의 부재가 가져온 폭력의 결과일지 모르겠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