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인간적인 커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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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중앙포토]

공공의 적 1호(Public enemy No.1).

'다저스의 목소리'로 불리며 최근 은퇴한 아나운서 빈 스컬리(89)가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28)에게 보낸 찬사다. 커쇼는 최근 6년간 100승을 거두며 세 차례(2011·12·14)나 사이영 상을 받은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다. 연봉(3457만 달러·약 390억원)도 가장 높고 인성까지 훌륭한 커쇼에게는 딱 한 가지 약점이 있다. 포스트 시즌만 되면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는 것이다.

커쇼는 12일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5전3승제) 4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1승2패로 뒤졌던 다저스는 이날 경기에서 지면 탈락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선 커쇼는 6회까지 탈삼진 10개를 잡아내며 워싱턴 타선을 2점으로 막았다. 커쇼가 직접 2루타를 때린 것을 포함, 타선도 5점을 뽑아 5-2로 여유있게 앞섰다. 하지만 가을야구의 신은 커쇼를 외면했다. 투아웃까지 잘 잡은 커쇼는 2사 1루에서 트레이 터너에게 어정쩡한 내야안타를 맞은 뒤 브라이스 하퍼에게 볼넷을 줘 2사 만루에 몰렸다. 결국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마운드로 걸어올라와 투수를 교체했다.

커쇼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구원투수 페드로 바에즈가 몸맞는 공을 준 데 이어 루이스 아빌란이 대니얼 머피에게 2타점 적시타를 내주면서 점수는 5-5 동점이 됐다. 커쇼는 승리투수 요건이 날아간 뒤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다행히 커쇼의 불행은 거기서 끝났다. 베테랑 체이스 어틀리가 8회 말 결승타를 날려 힘겹게 6-5로 승리했다.

커쇼는 유독 가을만 되면 힘을 못 쓴다. 2008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여섯 차례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으며 15경기(12선발)에 나갔으나 3승6패에 머물렀다. 평균자책점은 4.83으로 정규시즌(2.37)의 두 배가 넘는다. 피홈런도 정규시즌엔 9이닝당 0.54개지만 포스트 시즌에선 배 가까운 0.94개를 기록 중이다.

커쇼는 2013년 세인트루이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에서 6이닝 1실점했으나 타선의 침묵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1·2차전을 모두 내준 다저스는 류현진과 잭 그레인키의 호투로 3·5차전을 따냈으나 6차전에서 커쇼가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져 2승4패로 탈락했다. 이듬해 디비전 시리즈에서 다시 세인트루이스를 만났을 때도 결과는 같았다. 커쇼는 1차전에서 6회까지 2실점했으나 7회에만 6점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됐다. 1승2패로 몰린 4차전에선 커쇼가 6이닝동안 3실점했으나 2-3으로 졌다.

다저스 에이스인 커쇼는 포스트 시즌엔 짧은 휴식일 뒤에 등판하는 일이 잦았다. 정규시즌엔 4~5일을 쉬고 다시 나왔지만 포스트 시즌에선 3일 휴식 후 나온 경기가 많았다. 문제는 다저스 불펜이 든든한 편이 아니라 감독이 그에게 최대한 긴 이닝을 맡겼다는 점이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커쇼는 6회까지 전력을 다해 상대 타선을 막았다. 기합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돈 매팅리(현 마이애미)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간 뒤 7회에도 등판했다. 아마 '조금 더 던져달라'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책임감이 있는 커쇼는 이를 받아들였고, 결과는 대량실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커쇼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지난해 뉴욕 메츠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는 1승1패를 기록했고, 올해도 1차전에선 5이닝 동안 8피안타·3실점하고 승리를 따냈다. 커쇼는 1차전 뒤 "내용이 좋지 않았지만 어려운 경기를 이긴 것에 만족한다. 올해는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승을 향해 가는 길은 산 넘어 산이다. 일단 14일 디비전 시리즈 5차전에서 워싱턴을 꺾어야 한다. 다저스는 2차전에서 4와3분의1이닝 4실점한 리치 힐, 워싱턴은 1차전에서 6이닝 4실점했던 맥스 슈어저가 나선다. 송재우 위원은 "선발 싸움은 워싱턴에 무게가 쏠린다. 설사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라가도 상대가 올시즌 최다인 103승(58패)을 거둔 시카고 컵스다. 게다가 컵스는 3승1패로 올라와 이틀을 더 쉰다. 커쇼와 다저스 입장에선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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