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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벽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홀 남북 양쪽 벽에 반달형으로 그려진 벽화가 일제의「내선일체」의도를 반영하는 치욕적인 내용이라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조선』1922년 4월 호는 이 그림들이 한일 두 나라의 전설을 소재로 한 일본인 화가「와다·산조」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우리나라 전설인「나무꾼과 선녀」와 일본의 비슷한 설화「하고모로」가 주제가 되었다는 부언도 있다.
실제 북쪽 그립은 금강산 같은 바위산과 나무꾼, 선녀 같은 모습이 비쳐 한국의「나무꾼과 선녀」전설을 연상시키고, 반면 남쪽 그림은 후지산 같은 배경과 바 다가 보여 일본설화의 느낌이 짙다.
그러나 달리 보면 그 그림들은 유럽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화를 닮았다.
그림 자체는 뛰어난 솜씨로 보긴 어렵지만 그런대로 중앙 홀의 위엄과 격조를 높여 준다. 하지만 이 그림을 가지고 어떤 이는 일제의「내선일체」의도를 가진 그림이니, 민족의 수치라며 그냥 둘 수 없다고 분개한다.
이 사건이 어떻게 결말날 진 알 수 없지만 올해 들어 벽화가 유난히 말썽 많았던 게 주목된다.
독립기념관에 걸릴 벽화『3·1운동도』가 말썽이더니 신촌 역 앞 벽화『통일의 기쁨』이 강제 철거됐다.
또 정릉의『상 생도』도 민중 벽화라고 철거되었다.
그림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특이하지만 툭하면 철거해 버리고 마는 풍토도 걱정스럽다.
중앙박물관 중앙 홀의 벽화는 예술작품이란 측면에서나 역사적 유물이란 점에서 특히 중시되어야 할 것 같다.
「민족의 치욕」이라고 생각하면 한이 없다. 일제 총독부건물을 그대로 중앙청으로 쓰고, 또 중앙박물관으로 쓰는 것조차 낯뜨겁다.
일제의 지배하에 있던 이 강토마저 아주 뭉개 버리면 시원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역사의 치욕은 때로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남긴다.
조선의 인조가 엄동설한에 이마를 땅에 부딪치며 청 태종에게 항복했던 기록을 실은「삼전도비」도 우리는 보존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 일본인 화가의 벽화가 있다고 해서 분개만 할 일은 아니다.
그 건물은 이미 박물관이며 그만한 예술과 역사를 보존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 벽화의 사연을 관람객들에게 상세히 알리는 표지판이라도 세운다면 우리의 자세가 더 당당할 것도 같다. 치욕을「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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