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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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주경야독>
이종현<전북 이리시 영등동 547의28>
우렁찬 톱니바퀴
심지로 살찌우고
내려 앉는 눈꺼풀
연필로 버팀목 세워
무지개 올올이 조각하는
오늘 하루 나의 일과.

<어머니>
나대영<전남 광주시 서구 월산5동 1038의28>
아득한 세월의 끝
난간에 기대시어
터지는 꽃망울을
눈부시게 보시다가
후두둑 소나기 소리에
줄달음 친 그 모습.

<달맞이>
최향선<전남 여천군 율촌면 여흥리4구>
한가위 달 밝은 밤
비취빛 물빛 너머
동네 어귀 당산 아래
강강수월래야
아낙들 신명난 노랫소리
치마폭에 감긴다.

<석류>
김덕율<부산시 남구 문현2동 547의21 13통4반>
한여름 뙤약볕에
다물었던 입을 열고
바람의 즙을 마시며
가슴마저 활짝 열고
청하늘 물감을 쩍어
하얀 이빨 닦는다.

<선후평|평범한 소재의『어머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
시조, 즉 시를 쓰는 경우 누구나 할수 있는 소리일땐 어쩐지 새롭지가 못하다. 이 말은 곧 식상한 이미지, 식상한 언어들이란 말과 같다.
누구의 소리도 아닌 바로 나만의 소리일때 새롭다고 한다. 이러기 위한 과정이 물론 쉽지는 않다. 이는 자기만의 시안을 갖는다는 말인데, 잘라 말해 개성이라고 한다.
자기만의 시안인 개성을 만들기 위해선 부단히 좋은 시조를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계속해야만 선별의 눈이 생기게 되고, 작품을 압축하게 되고, 은유와 암시를 이미지 속에 투영하고 용해하게 된다.
선자가 작품을 고를 땐 위와 같은 요건을 얼마나 갖추었느냐 하는걸 본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주경야독』은 차라리 중·종장이 돋보인다. 초장의「톱니바퀴」가 어쩐지 잘 맞지를 않는다. 필연 밭갈이를 암시한듯 한데 지나친 비유같다. 이에비해「내려 앉는 눈꺼풀 연필로 버팀목 세워」의 표현은 뛰어나다. 시조 한 수의 조화가 무엇인가를 터득해나가야 하겠다.
『석류』는 뛰어난 암시성이 눈에 띄고 무리가 없이 새롭다.「바람의 즙」을 마시고「청하늘 물감을 찍어 하얀 이빨 닦는다」가 그것이다. 비교적 자주 대하는 얼굴인데, 자기만의 시안을 좀더 키웠으면 싶다.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달맞이』와 유사한 제목의 작품이 많았으나 그래도 그중 나아 보였다. 술술 풀리는 맛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비취빛 풀빛 너머」가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고, 그리고 종장이 그런대로 안정감을 준다.
『어머니』는 평범한 소재를 승화해간 것이 대견하다. 초·중장이 특히 그렇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군더더기 없이 남을 것만 남았다. 종장도 적당한 중량을 지녀 이 주일의 가작이라 하겠다.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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