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불쌍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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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엄마 나 죽기 싫어." 아직도 그 소리가 귀에 맴돌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아라.윤상.은서는 이미 우리와 같이 있지 않다.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죽을 정도로 어려운 사정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20여년 전 일이다. 아내 손을 잡고 외출했던 딸 아이가 물었다 "아빠,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데 불쌍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그렇다. 내 주위에는 이 세 남매처럼 절박한 사람들이 없다. 불쌍한 사람들은 신문과 방송에만 있다. 그래서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가면 온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신문에 안나면 우리 주변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 초등학교 1년의 아라는 3천6백원이 없어 수영장 현장실습을 가지 못했다. 죽고 난 후에야 선생님은 "그렇게 어렵게 사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의료보험 혜택도 못받아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 복지국가는 가난 해결 못해

거창하게 얘기하면 도시화의 문제요, 경제적 차별의 문제다. 아파트에 사니 같은 동네라도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다. 부자들은 부자끼리 모여사니 불쌍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불쌍한 이웃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부터가 찢어지게 가난해 옆집을 돌볼 여유가 없다.

그러니까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사회적 안전망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가난의 문제는 국가가 알아서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골치 아픈 이웃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떠맡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국은 도시빈민을 위해 수백억달러의 돈을 매년 쏟아왔다. 그러나 도시빈민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인.관료.사회복지사 등만이 번창했다. 이른바 가난산업(Poverty Industry)이다. 보조금은 이를 받는 사람들을 마치 니코틴처럼 인이 박히도록 만든다. 이 병은 곧 전염된다.

어렵게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보조금을 받는 생활을 원하게 된다. 그러자니 정부는 돈이 더 들고,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결국 성장력을 잠식시켜 나라경제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신화를 믿는 나라가 없게 됐다.

복지국가의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파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의식과 문화를 변질시켰다. 즉 개인이 못사는 이유가 사회제도의 잘못이기 때문에 개인의 경제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즉 나의 힘으로 내가 산다는 독립적인 노동의 윤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라 엄마.아빠는 열심히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아빠는 실직 후 막노동으로 전전하면서 적은 돈을 집에 보냈다. 엄마도 가끔 식당일 등을 했으나 세살 난 은서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죽던 날 애들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누가 옆에서 조금만 용기를 북돋워줬어도 우리는 그들을 떠나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정부는 해방 후 가장 진보적인 정부다. 그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며 표를 얻어 집권했다. 그 진보적인 정부 밑에서 이들은 죽어갔다. 그들이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다면 누구든 그 장례식에 나타났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속죄요, 책임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음모론 운운하며 권력싸움에 눈이 멀어 있다. 아라네는 그들의 친구가, 이웃이 아니었다. 단지 권력을 잡는 데 동원된 표요, 수단일 뿐이었다.

*** 보이지 않는 이웃 볼 수 있는 눈

정치가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보통사람들인 우리들일 수밖에 없다. 비록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한다 해도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잘난 척하는 만큼 그 때문에 상처입는 사람도 많아진다.

아라 엄마도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잘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갈 용기를 잃었던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한다. 이런 기막힌 참상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웃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외면하고 국가에 미룰수록 그 만큼 국가의, 정부의 권력은 강해진다. 이는 곧 우리의 자유가 줄어들며 권력의 속박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문창극 논설위원실장